“주방에 식용유 방울 떠다녀”…탕수육 튀기다 숨진 날 산재 인정

입력
수정2023.06.08. 오전 6:27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다큐영상]
“날아다니는 식용유 말도 못 하게 미세”
‘배기 후드’ 수직 아닌 벽 방향 설치하면
조리흄 상당량 호흡기 거치지 않고 배출
사진 조윤상 피디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730’을 쳐보세요. 

돌이켜보면 김치전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조리사와 영양사는 늘 급식조리원들에게 김치전을 얇게 구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지시를 급식조리원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열판 위에서 수백장의 전을 꾹꾹 누르다 보면 손가락 끝부터 어깨까지 관절 마디마디가 다 아팠다.

고무장갑 안에 두꺼운 목장갑을 끼고 일해도 전이 구워지는 열판의 열기는 스멀스멀 들어와 손까지 익히려 들었다. 열기를 식히려고 창문이라도 좀 열라치면 ‘바람에 불꽃이 흐트러져서 안 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전이나 튀김이 급식 메뉴로 나오는 날에는 조리실에 요리로 생긴 매연이 구름처럼 끼었다. 자욱한 연기엔 독한 세제 냄새도 섞여 있었다. 기름때 낀 조리도구를 세척하려고 물에 푼 ‘약품’ 냄새다.

이런 날엔 조퇴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매연과 약품이 뒤섞인 연기를 잔뜩 들이마신 이들은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 같다며 병원으로 갔다.



‘암 걸릴 것 같다’는 말장난이었는데

“우리가 지짐을 구우면서도 장난으로 얘기했어요. ‘이렇게 냄새 맡아가지고 우리 암 걸릴 것 같다’, ‘우리 오래 못 살 것 같다’ 장난으로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씨가 됐는지 폐에 그렇게 됐네요.”


학교 급식실에서만 25년 근무한 이미숙(가명)씨는 지난해 3월 폐암 판정을 받고 올해 5월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급식종사자 4만2077명을 대상으로 폐를 검진한 결과, 이상 소견자는 1만3653명에 육박했다. 이 중 폐암 의심 및 확진 소견을 받은 사람은 341명이다.

그래픽 조윤상 피디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조윤상 피디


급식종사자의 폐에 문제를 일으킨 원인으로는 ‘조리흄’(cooking fumes)이 지목된다. 조리흄은 고온의 기름을 사용하는 요리를 할 때 많이 배출되는 일종의 미세먼지다. 조리 미세먼지는 그 자체로도 발암물질이지만, 포름알데히드나 다환방향족탄화수소(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s, PAH)와 같은 유해물질도 포함하고 있다.

국제암연구소는 조리흄을 폐암의 위험 요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김대호 업무관련성평가 부장(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은 “조리 기간이 길거나, 조리흄 농도가 높거나, 환기 설비가 없거나 하는 경우에 폐암 발생 위험이 일관되게 높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조리흄은 학교 급식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 소장은 “열을 이용해서 식재료를 조리하는 직업은 대부분 (학교 급식실과) 똑같은 현상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 오종홍씨. 유가족 제공


학교 ‘밖’ 죽음의 부엌



지난해 5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오종홍씨는 경력 13년의 베테랑 요리사였다. 오씨가 근무했던 웨딩홀 조리실은 환기가 어려운 공간이었다. 지하에 있는 조리실에 주요 환기시설이라고는 선풍기와 창문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환기할라치면 위층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열기가 올라온다며 불평을 내려보내서다.

조리실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식용유 연기는 고스란히 그의 몸에 스몄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옷을 벗어도 식용유 냄새는 벗지 못했다. 출근할 때도 식용유를 몸에 한 겹 두른 느낌은 여전했다. 지하철만 타면 어쩐지 주위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것 같았다. 그는 코끝에 머무는 식용유를 지워내고 싶었다. “야, 담배를 피우면 좀 괜찮아.” 회사 선배는 담배를 권했다. 그즈음 담배를 다시 물었다.

오종홍씨가 산업재해 신청 당시 조리실 업무 내용을 자필로 적은 사실확인서. 유가족 제공


오씨는 끓는 기름 앞을 떠나지 못했다. 저연차 때는 어쩔 수 없어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뒤엔 책임감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름에 데기 싫어서, 몸에 냄새를 입히고 싶지 않아서 튀김 요리를 꺼렸다. ‘내가 하고 말지’ 생각했던 오씨가 그 자리에서 수많은 탕수육과 생선튀김을 만들어냈다.

몇 년 후, 더 이상의 기름 냄새를 버티지 못한 그는 조리실을 떠났다. 하지만 그때 들이켰던 요리 매연은 폐에 회복할 수 없는 상해를 남겼다. 오씨는 2018년 12월에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지난해 7월 사망했다. 그날 그는 폐암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오종홍씨 요양·보험급여결정통지서. 유가족 제공


전문가들은 급식실뿐 아니라 조리 노동현장 곳곳에 조리흄의 위험성이 깔려있다고 지적한다. 류지아 국제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사회 전반적인 요식업 종사자 중에서도 고위험군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문제가 심각할 것으로 지목되는 장소는 중식당, 치킨집 등 튀김 요리를 많이 하는 영세 사업장이다.

사공준 영남대병원 예방의학교실 교수(직업환경의학과 과장)도 “튀김 요리가 몸에 해로운데, 동네마다 있는 중국 음식점 주방장들은 어떻겠냐”며 “치킨집 등 (영세 사업장)으로 (조리흄) 문제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조윤상 피디


사진 조윤상 피디


‘배기 후드’ 방향만 바꿔도



조리흄 위험은 어떻게 낮출 수 있는 걸까? 현실적으로 조리흄을 완전히 주방에서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환기시설을 제대로 갖추면 조리실 노동자들이 조리흄에 최대한 덜 노출되게 만들 수는 있다. 류 교수는 “직업성 암은 유해 인자 노출을 감소시켰을 때 예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환기 시스템의 최우선 목적이 ‘열을 밖으로 뽑아내기’에서 ‘노동자 보호’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보통의 배기 후드는 조리대에 수직으로, 노동자 머리 위쪽에 설치돼 있다. 열을 효율적으로 뽑아낼 순 있지만 조리흄이 노동자의 코와 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배기 후드를 벽 쪽으로 배치하면 상당한 양의 조리흄이 노동자의 호흡기를 거치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김태형 창원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는 “가능하면 사선 방향으로, 벽 쪽으로 (조리흄을) 가게 하면 훨씬 덜 마실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