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람 다쳤는데…경찰이 수사 기록 조작, 1년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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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5.09. 오후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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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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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

제주의 한 경찰관이 교통사고 수사 기록을 장기간 조작했다가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이 경찰관은 인적 피해가 발생한 교통사고 10여 건을 물적 피해만 있는 것처럼 수사 기록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인피사건'을 '단순 물적 피해'로 둔갑

제주경찰청과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제주 서귀포경찰서에서 교통사고 처리를 담당했던 A 경장은 지난 2020년 5월 2일 모 도로에서 발생한 오토바이 교통사고 사건을 맡았습니다.

당시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23일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해가 발생했는데, A 경장은 이를 알고도 물적 피해만 있는 것처럼 수사보고서를 조작했습니다.

통상 사람들이 다친 '인피 사건'은 경찰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하고, 사고 원인 등을 규명해야 합니다.

또한 탑승자와 동승자를 확인하고 사고 현장 약도 등이 포함된 실황조사서와 관련자 조사 내용 등이 포함된 사건기록을 만들고 결재권자의 결재를 받아 송치 여부 등을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A 경장은 이 같은 업무를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조작했습니다.

당시 A 경장은 교통사고 조사팀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수사보고서 피해 사항에 '인적 피해 없음'이라고 작성했습니다.

사고처리 내용에도 '인적 피해 사실이 없어 단순 물적 피해 교통사고로 종결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을 허위로 기재했습니다.

■ 11개월 동안 14건 조작…억울한 피해자 생길 뻔

A 경장은 이런 식으로 그해 5월부터 2021년 3월까지 11개월 동안 14건(중상 4명·경상 10명)의 인적 피해 사고를 단순 물적 피해 사고로 둔갑시켰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어린이 교통사고도 있었고, 진단서가 제출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A 경장은 조작한 수사보고서를 종결 처리하기 위해 교통경찰업무관리시스템(TCS)에 접속해 허위 정보가 입력된 전자기록을 생성하고, 이를 팀장과 과장에게 전송해 최종 종결 처리했습니다.

서귀포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

특히 A 경장이 조작한 수사기록 가운데 3건은 피의자가 무보험이거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위반한 사례 등이었습니다.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할 피의자들이 경찰 조사조차 받지 않을뻔한 겁니다. 또 이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도 생길뻔했습니다.

제주경찰청은 이 같은 사실을 내부적으로 파악해 감찰에 착수했습니다.

조사결과 A 경장은 자신의 업무 처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 수사기록을 조작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피의자들로부터 대가를 받은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경찰은 공전자기록등위작과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A 경장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또 뒤늦게 A 경장이 조작한 사건을 재수사해 관련자들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 경찰, 지난해 5월 A 경장에게 중징계 처분

서귀포경찰서는 지난해 5월 징계위원회를 열어 A 경장에게 중징계 처분을 내렸습니다.

다만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팀장과 과장에 대해서는 따로 징계 처분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주경찰청 관계자는 "책임자들이 당시 A 경장에게 관련 교육을 실시했고, 의도적으로 기록을 바꾼 것을 팀장과 과장이 인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판단해 따로 문책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제주경찰청은 A 경장 사건을 적발한 뒤 분기별 실시하던 교통사고 부서 점검을 매달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상률 제주경찰청장은 KBS취재가 시작되자 당시 징계 조치가 적절했는지 등에 대해 진상조사를 지시했습니다.

■ "형 너무 무겁고 부당하다" 항소했지만 기각

제주지방법원은 지난해 "경찰공무원의 임무를 저버려 도덕적으로도 강한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며 A 경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감찰을 받게 되자 교통사고 피해자들에게 '보험처리가 됐고, 다친 곳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달라고 하는 등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진술을 종용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또 "감찰 결과 범행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경찰 조사조차 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손상되는 등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A 경장은 1심 판결 이후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습니다.

A 경장 측은 아무런 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이고, 그동안 성실히 근무해 각종 표창을 받은 점 등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주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최근 열린 항소심에서 "경찰공무원은 직무에 관하여 거짓으로 보고나 통보를 해선 안 되고, 직무를 게을리하거나 유기해서는 안 된다"며 "범행 기간이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고, 죄질도 불량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피고인이 경찰공무원으로 계속 근무하길 바라며 관대한 처벌을 바라지만, 공전자기록등위작죄와 행사죄는 10년 이하의 징역형만으로 규정된 중대한 범죄"라고 덧붙였습니다.

재판부는 "1심 형량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사정과 유리한 사정을 모두 참작했고, 이후 양형에 반영할만한 사정도 없다"며 A 씨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A 경장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집행유예 형이 확정되면 A 경장은 경찰공무원법에 따라 당연 퇴직 처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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