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업체에서 일하던 A씨. 신생 경쟁업체로부터 좋은 대우를 제안받았다.

이전 회사 대표의 서운함을 뒤로한채 사직한 A씨. 쉬지도 못하고 새회사로 출근한 첫날, A씨는 '3개월 시용' 계약서를 받았다.

형식적 절차라는 설명에 마지못해 서명한 A씨. 당황스럽게도 열흘 만에 '인화력 부족' '능력 부족'을 이유로 해고 당하고 말았다.

A씨를 스카우트한 건 선두 업체에 타격을 주기 위한 작전이었고, 시용 기간 내내 다른 직원들이 데면데면했던 것도 이 때문임을 나중에 알게 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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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용 직원'은 쉽게 해고 가능? NO!

간혹 사업주들이 '시용' 계약을 체결하고 이 기간동안은 직원을 쉽게 내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용기간이란 아직 정식 채용이 아닌 상태로 ‘이 기간에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보고 결정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실무에서 시용은 '수습'과 혼용되기도 한다. 수습은 정식 근로자로 채용됐고 적응 기간을 부여한다는 뜻으로 시용과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법원도 혼용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특히 계약서에 '수습'이라고 기재돼 있어도 "3개월 수습 기간 후 평가를 거쳐 해고할 수 있다"는 해고유보 조항이 들어있다면 시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

주의해야 하는 점은, 시용도 정규직은 아닐지라도 엄연한 근로계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시용기간 중 해고하거나 시용 기간 만료 후에 정규직 계약을 안 해주는 것도 근로기준법상 '해고'다.

다만 대법원은 "시용 제도의 취지에 비춰볼 때, 일반적인 해고보다는 해고 사유가 넓게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그 기준으로 "업무능력 부족, 조직 부적합 등의 사유로 인한 정규직 채용 거부가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하고 사회 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돼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합리적 이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결국 시용기간 해고도 "업무능력이나 적격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최소한의 기준과 근거자료를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객관적 평가 절차' 없으면 부당해고

중견·영세업체에서는 사장이 시용 직원들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바탕으로 채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부당해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시용 근로자에 대한 평가 항목을 구체화하고, 별도 평가자를 두거나 동료들의 평가를 반영해 객관적으로 수치화(예를 들어 '인화력''업무능력' 등 각 항목별로 15점 만점에 상중하로 5점씩 차등을 두는 방식 등) 해야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중앙노동위원회도 비슷한 판정 흐름을 보인다. 지난 1일 중노위에 따르면, 중노위는 최근 신선식품 판매업체가 3개월 수습 근로자를 '본채용 점수 미달'을 이유로 해고한 사례에서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중앙2022부해1471).

회사 측은 근로자 평가에서 '근태항목'은 최고등급인 'S'를 준 반면, '징계이력'에서 구두경고 2회로 낮은 등급을 줬다. '팀워크'도 동료들과 협업자세가 기준 미달이라며 낮은 점수를 줬다.

이에 대해 중노위는 "구두경고를 받은 이력 및 근거가 존재하지 않으며, 동료들과의 협업이 미흡하다는 평가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 등 수습평가서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현저히 부족하다"며 "임원회의를 개최해 수습평가서를 근거로 본채용 거부를 의결했다고 주장하나 임원회의 회의록 등 객관적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정해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시용 직원의 '업무 능력부족'을 이유로 해고하는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엄격한 편이다. 텔레마케터 회사에서 동료 수습사원들의 주당 건수 실적이 하루 평균 4.14건인데 비해, 하루 평균 실적이 1.71건에 그친 수습 근로자를 해고한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법원 판결도 있다(2021구합77647).

한편 최근 판결에서 법원은 "동료들과의 인화력""근태" 평가를 주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평가 자체는 다소 엉성하더라도, 동료들의 판단을 바탕으로 “전반적으로 상급자의 명령·지시 및 동료들 간의 인화가 절대 부족함”이라고 기재돼 있는 경우 시용 중 해고를 인정해준 사례도 있다(2021가합23).

사업주들은 대법원이 최근 판례에서 시용 근로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본채용 계약을 거부하려면 구체적인 사유를 ‘서면’ 통지해야 한다는 대법 판결도 있다.

그 밖에도 대법원은 "수습 근로자라고 할지라도 '업무상 부상·질병으로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 해고하지 못한다'는 근로기준법 23조 2항이 적용된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시용기간도 퇴직금 산정 기간에 포함된다는 판결도 내렸다.

사업주들이 '맛보기'나 '가전제품 테스트'의 개념으로 시용 근로자를 뽑았다가는 큰 뒤탈이 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앞서 사례에서 A씨의 경우, 불과 열흘 안에 '업무능력 부족'이나 '인화력 부족'을 입증할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고, 객관적 평가 절차가 있다고 보기 만무하다. 여러모로 부당해고로 구제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