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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학폭 벗어나니 '직폭'… 출근이 두려운 직장인들

박홍주 기자
입력 : 
2023-03-05 17:21:26
수정 : 
2023-03-05 17: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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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가 직장내 괴롭힘 경험
정순신 아들 학폭 사례처럼
모욕·폭언 등 언어폭력 심각
피해자 부당행위 신고해도
사측 '업무방해'로 되레 소송
"소송갑질 2차 가해 막아야"
사진설명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 A씨(28)는 지난해 상사에게 '미친 XX' '나 열 받으라고 이 따위로 일하느냐'라는 말을 들었다. 상사에게 제출한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인격 모독을 당하면서도 반박하지 못하고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하는 제 모습에 모멸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B씨는 회사에 재직한 6년 동안 사업주의 사적인 심부름(개인 유튜브 영상 편집, 쇼핑, 세미나 대리 수강, 어머니 심부름 등)을 떠맡았다. 이에 불응하자 사업주는 B씨를 투명인간 취급했고, 화가 나면 "X이나 팔 줄 알지 할 줄 아는 게 없는 XX" 등 폭언을 퍼부었다. B씨는 최근 정신과 진료를 받았고, 사업주의 폭언과 갑질 증거들을 모아 퇴사를 준비 중이다.

'아들 학교폭력(학폭)'으로 최근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사태로 학폭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직장폭력(직폭)' 문제 역시 심각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 변호사의 아들이 동급생에게 언어폭력을 가한 것처럼, 폐쇄적인 직장 내에서 상사가 후배 직원들에게 욕설이나 모욕을 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5일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의 '2022년 12월 직장인 인식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3명 가까이(28.0%)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들의 세부 내용(중복 포함)을 살펴보면 '모욕·명예훼손'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5.6%, '폭행·폭언'을 경험한 사람은 9.4%로 나타났다. '부당 지시'(16.5%), '업무 외 강요'(11.2%), '따돌림·차별'(10.6%) 등도 많았다.

지난 1~2월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292건 중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확인된 사례는 175건(59.9%)에 달했다. 지난해 1~5월 조사에서 제보 944건 중 '직장 내 괴롭힘'이 513건으로 54.3%였던 점을 고려하면 1년여 사이에 직장 내 괴롭힘 비중이 늘어난 셈이다.

학폭이 수많은 피해 청소년의 정신을 파괴하듯이, '직폭'은 성인인 직장인들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직장갑질119 조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한 이들 중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7.1%였다.

정 변호사의 사례처럼 '직폭'에서도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송이 남용되곤 한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신고한 뒤 역으로 '소송 공격'을 받은 D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D씨는 회사가 수차례 육아휴직 사용을 거부하자 이를 신고했는데,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회사가 되레 D씨를 명예훼손·업무방해로 고소한 것이다. D씨가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자 회사는 징계 사유를 나열하며 해고 처분하겠다고 통지해 왔다. 근로기준법상 '신고를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지만, 현실에서는 법이 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기호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형사고소나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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