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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 '특고'라 외면당한 캐디의 죽음···법원 "직장 내 괴롭힘 인정"

[Pick] '특고'라 외면당한 캐디의 죽음···법원 "직장 내 괴롭힘 인정"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캡틴은) 내가 상처받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밑바닥까지 망가뜨린 것 끝까지 잊지 않겠다.'

3년 전, 경기도 파주시 한 골프장에서 캐디(경기보조원)로 일하던 배 모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쓴 글입니다.

배 씨는 이른바 '캡틴'으로 불리던 상사 A 씨로부터 다른 캐디들도 들을 수 있는 무전으로 공개적인 지시를 받으며 "뚱뚱해서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뛰어"라거나 "오늘도 진행이 안 되잖아, 또 너냐"라는 등 지속적으로 외모 비하가 포함된 모욕적인 발언을 받아왔다고 호소했습니다.

급기야 배 씨는 캐디 인터넷 카페에 부당함을 항의하는 글을 썼지만 20분 만에 삭제됐고, 이후 강제 탈퇴 처리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만에 가해자와 회사 측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1부(재판장 전기흥)는 숨진 캐디의 유족이 가해자 A 씨와 소속 회사인 B 대학 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유족에게 약 1억 7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골프장 측은 배 씨가 골프장에서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라 일종의 프리랜서인 '특수고용노동자(특고)'라며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고, 유족 측은 고용노동부에 판단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A 씨의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 인정했지만, 관련법 적용은 어렵다고 봤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 2항)의 적용을 받으려면 피해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여야 하는데, 캐디는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업무위탁계약 등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이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은 첫 사례였음에도 정작 법적인 미비로 보호는 해줄 수 없다는 모순까지 인정한 셈입니다.

법원, 판사, 판결, 의사봉, 재판, 선고 (리사이징)

그러나 법원은 골프장 캐디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면 관리·감독하는 사용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A 씨는 캐디들을 총괄, 관리하는 지위상의 우위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고 근무 환경을 악화시켰다"면서 가해자 A 씨가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B 대학 법인 측에 대해서도 "A 씨로부터 모욕적인 발언이나 공개적 질책을 받은 피해자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항의글을 남겼는데도 B 대학 법인 측은 피해자를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A 씨의 사무 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사건의 원고 대리인이었던 직장갑질119 윤지영 변호사는 "그간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인 근로자 여부만을 기준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했다"며 "하지만 이번 판결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할 수 있음을 인정했고, 가해자뿐 아니라 회사 측에도 책임을 인정한 점에서 의미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캐디를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위탁계약 노동자 등은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근로기준법의 사용자와 노동자(근로자) 개념을 확대하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에 원청을 추가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 [2021.02.22 8뉴스] 직장 내 괴롭힘 맞지만 법적 보호는 어렵다

(사진=SBS 8뉴스 자료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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