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차장, 왜 경비실에서 근무하다 퇴사했을까?

입력 2022.10.16 (10:00) 수정 2022.10.1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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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KBS로 한 건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제보자는 자신이 공기업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다가 퇴사한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더니 도저히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는 하소연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한번 들어봤습니다.

■ 차장 직책 달고 경비실에서 근무하게 된 사연

경북 구미시 공무원이었던 조민현 씨. 그는 2005년 구미시 산하 공기업인 구미시설공단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2014년 말 어느 날. 당시 조 씨는 구미시설공단 도서관운영팀 소속으로 한 작은 도서관에서 총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한 학생이 도서관 시설물에 팔을 긁히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에 해당 학생의 부모가 지속적으로 거세게 항의했고, 조 씨는 그 민원을 도맡았다고 합니다.

한 달쯤 뒤, 그는 길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뇌출혈. 조 씨에 따르면 당시 담당 의료진은 스트레스로 인한 혈압 상승이 뇌출혈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조 씨는 병가를 냈다가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16년 3월 복직했는데, 얼마 안 가 뇌출혈 후유증으로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마비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4급 장애 판정을 받게 됩니다.

정기 인사이동을 앞두고 조 씨는 "몸이 불편하니,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춰진 곳으로 인사발령을 내달라"고 인사팀에 요청했지만 묵살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구미 하수처리장으로 발령이 났는데, 지어진 지 수십 년이 되어서 시설이 굉장히 노후한 곳이었습니다. 장애인 화장실과 같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커녕 입구부터 사무실까지 제 걸음으로 걸어가기에 멀었을뿐만 아니라 올라야 할 계단이 많았거든요. "

결국, 같은 팀의 상사가 조 씨에게 시설 초입에 있는 경비실에서 근무하지 않겠느냐 제안했고, 조 씨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는 경비실에서 방문객 목록 작성과 안내 등 업무를 맡았습니다. 반년이 지난 2018년 12월, 조 씨는 스스로 회사를 등지게 되었습니다.

"차마 쫓아내지는 못하겠으니 알아서 나가라는 식으로 발령을 낸 거죠. 하수처리장에서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경비실에서 근무하게 된 겁니다. 심한 묘멸감을 참고 참았지만, 가족들과 의논 끝에 명예퇴직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실제 조민현 씨가 근무했던 경비실.실제 조민현 씨가 근무했던 경비실.

■ 구미시설공단 "경비실, 편한 자리…배려 차원이었다"

구미시설공단 측은 조 씨를 충분히 배려한 조치였다고 반박합니다.

"저희들이 많이 배려를 한 조치였습니다. 말이 경비실이지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편한 자리입니다. 저희가 다 챙기지 못해서 그 분이 섭섭한 거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삭히지 못한 감정들 때문에 자꾸 제보나 연락을 하시는 게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해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이 사안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1조 위반 소지가 매우 큽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조항은 사용자는 장애인이 해당 직무를 수행하면서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한 근로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의 의사에 반하여 다른 직무에 배치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국장은 "많은 조직이 장애를 가진 직원들을 배제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곤 합니다. 장애인들은 회사가 발령에 대해 부당한 제안을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인으로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거죠"라고 전했습니다.

우연이었는지 취재가 시작된 당일, 구미시 감사실은 밤 8시에 조 씨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왜 자꾸 민원을 넣냐는 내용의 전화였습니다.

아무래도 구미시와 구미시설공단에게 조 씨는 귀찮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조 씨는 꾸준히 민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달리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라며 “과거 발령 등에 관한 정확한 조사와 구미시‧구미시설공단 차원의 인정 그리고 사과를 원합니다”고 전했습니다.

취재가 끝날 무렵,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뗐습니다.

4년 동안 아무도 제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취재해주시고 많은 관심을 주셔서 눈물이 나오네요. 가슴에 맺힌 응어리와 울분을 잠시나마 풀었습니다. 그동안 참 힘들고 어려웠는데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자체 조사 결과 문제없다"는 구미시설공단과 "시설공단의 조사 결과를 살펴보니 문제없다"는 구미시. 어쩌면 조민현 씨에게 필요했던 것은 작은 배려와 귀 기울임이 아니었을까요?

(그래픽 :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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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6 10:00:44
    • 수정2022-10-16 15:40:46
    취재K

얼마 전 KBS로 한 건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제보자는 자신이 공기업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다가 퇴사한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더니 도저히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는 하소연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한번 들어봤습니다.

■ 차장 직책 달고 경비실에서 근무하게 된 사연

경북 구미시 공무원이었던 조민현 씨. 그는 2005년 구미시 산하 공기업인 구미시설공단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2014년 말 어느 날. 당시 조 씨는 구미시설공단 도서관운영팀 소속으로 한 작은 도서관에서 총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한 학생이 도서관 시설물에 팔을 긁히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에 해당 학생의 부모가 지속적으로 거세게 항의했고, 조 씨는 그 민원을 도맡았다고 합니다.

한 달쯤 뒤, 그는 길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뇌출혈. 조 씨에 따르면 당시 담당 의료진은 스트레스로 인한 혈압 상승이 뇌출혈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조 씨는 병가를 냈다가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16년 3월 복직했는데, 얼마 안 가 뇌출혈 후유증으로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마비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4급 장애 판정을 받게 됩니다.

정기 인사이동을 앞두고 조 씨는 "몸이 불편하니,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춰진 곳으로 인사발령을 내달라"고 인사팀에 요청했지만 묵살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구미 하수처리장으로 발령이 났는데, 지어진 지 수십 년이 되어서 시설이 굉장히 노후한 곳이었습니다. 장애인 화장실과 같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커녕 입구부터 사무실까지 제 걸음으로 걸어가기에 멀었을뿐만 아니라 올라야 할 계단이 많았거든요. "

결국, 같은 팀의 상사가 조 씨에게 시설 초입에 있는 경비실에서 근무하지 않겠느냐 제안했고, 조 씨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는 경비실에서 방문객 목록 작성과 안내 등 업무를 맡았습니다. 반년이 지난 2018년 12월, 조 씨는 스스로 회사를 등지게 되었습니다.

"차마 쫓아내지는 못하겠으니 알아서 나가라는 식으로 발령을 낸 거죠. 하수처리장에서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경비실에서 근무하게 된 겁니다. 심한 묘멸감을 참고 참았지만, 가족들과 의논 끝에 명예퇴직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실제 조민현 씨가 근무했던 경비실.
■ 구미시설공단 "경비실, 편한 자리…배려 차원이었다"

구미시설공단 측은 조 씨를 충분히 배려한 조치였다고 반박합니다.

"저희들이 많이 배려를 한 조치였습니다. 말이 경비실이지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편한 자리입니다. 저희가 다 챙기지 못해서 그 분이 섭섭한 거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삭히지 못한 감정들 때문에 자꾸 제보나 연락을 하시는 게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해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이 사안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1조 위반 소지가 매우 큽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조항은 사용자는 장애인이 해당 직무를 수행하면서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한 근로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의 의사에 반하여 다른 직무에 배치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국장은 "많은 조직이 장애를 가진 직원들을 배제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곤 합니다. 장애인들은 회사가 발령에 대해 부당한 제안을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인으로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거죠"라고 전했습니다.

우연이었는지 취재가 시작된 당일, 구미시 감사실은 밤 8시에 조 씨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왜 자꾸 민원을 넣냐는 내용의 전화였습니다.

아무래도 구미시와 구미시설공단에게 조 씨는 귀찮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조 씨는 꾸준히 민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달리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라며 “과거 발령 등에 관한 정확한 조사와 구미시‧구미시설공단 차원의 인정 그리고 사과를 원합니다”고 전했습니다.

취재가 끝날 무렵,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뗐습니다.

4년 동안 아무도 제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취재해주시고 많은 관심을 주셔서 눈물이 나오네요. 가슴에 맺힌 응어리와 울분을 잠시나마 풀었습니다. 그동안 참 힘들고 어려웠는데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자체 조사 결과 문제없다"는 구미시설공단과 "시설공단의 조사 결과를 살펴보니 문제없다"는 구미시. 어쩌면 조민현 씨에게 필요했던 것은 작은 배려와 귀 기울임이 아니었을까요?

(그래픽 :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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