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년 넘게 일한 파견노동자, 기간제 고용은 위법”

이효상 기자

업체 특별 사정·노동자 기간제 원할 땐 예외

대법원 “2년 넘게 일한 파견노동자, 기간제 고용은 위법”

파견직으로 2년 넘게 일해 직접 고용해야 하는 노동자를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이 아닌 기간제로 채용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개정 파견법에서 파견기간 2년이 경과한 노동자를 사용자가 직접 고용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고용형태여야 하는지 대법원이 판단한 것은 처음이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기간제 채용이 가능하다’는 고용노동부의 해석에 따라 노동자를 단기 계약직으로 꼼수 채용해 온 일부 사업장의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TJB대전방송에서 파견노동자로 4년간 일한 최모씨가 방송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해고가 정당하다고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씨는 TJB대전방송에서 2006년부터 약 10년간 일했다. 첫 4년은 대전방송의 아르바이트였고, 다음 4년은 근로계약은 파견업체와 맺고 일은 대전방송에서 하는 파견노동자였다. 2007년 시행된 개정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은 “2년 넘게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경우 원청 사업주가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고용의무’ 규정을 담고 있다. 이미 최씨를 4년간 파견노동자로 사용한 대전방송은 이 규정에 따라 최씨를 직접 고용하기는 했지만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이 아닌 1년짜리 기간제로 채용했다.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만 명시할 뿐 고용형태는 따로 규정하지 않은 법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최씨는 한 차례 계약기간을 연장해 도합 2년을 일했지만, 2016년 7월 대전방송과의 계약이 결국 만료됐다. 최씨는 파견법에 따라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때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어야 한다며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최씨의 동료 일부가 계약이 갱신된 점을 들어 최씨의 해고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당초 기간제로 직접 고용한 것의 부당성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2심은 1년짜리 근로계약서 대로 계약이 만료됐다고 보고 대전방송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파견법의 고용의무 규정을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강행규정’이라고 보고 파견노동자를 기간제로 채용한 것은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하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음에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 직접고용의무를 완전하게 이행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며 “근로계약에서 기간을 정했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무효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개정 전 파견법(옛 파견법)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옛 파견법에는 “2년의 파견기간이 만료된 다음날부터 사업주가 파견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직접고용간주 규정이 있었는데,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직접고용이 이뤄지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개정 후 파견법의 고용의무 규정에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제시한 원칙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업체에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노동자가 기간제 계약을 원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기간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봤다. 특별한 사정은 사업주가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판결로 파견노동자를 계약직으로 꼼수 채용하는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철도기술원은 불법파견 판단을 받은 파견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면서 8개월 단기직으로 채용한 뒤 해고한 바 있다. LG유플러스도 파견업체 노동자들을 기간제로 고용한 후 2년만에 계약을 해지해 부당해고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런 관행을 사실상 방치했던 노동부의 행정해석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노동부는 “(개정 파견법은) 특별히 고용 형태에 대하여 달리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기간제 근로자로 고용하더라도 무방하다”는 2007년의 행정해석을 현재도 유지하고 있다.

최씨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오월의 강호민 변호사는 “2007년부터 15년 넘게 노동부의 행정해석에 따라 파견노동자를 기간제로 채용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며 “대법원이 고용의무 규정을 강행규정으로 판단하고, 파견노동자를 고용할 때 원칙적으로 기간을 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 점이 의미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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