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 관계'의 잘못된 선택… 세종 뇌출혈 방치 사망 사건

살인,폭행,상해,협박,사기 관련 판결

'내연 관계'의 잘못된 선택… 세종 뇌출혈 방치 사망 사건

대법원. 연합뉴스

2019년 8월 16일 밤 10시. 청바지에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성이 세종시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들어섰다.

불과 4시간 뒤인 새벽 2시, 한 남성이 의식을 잃은 여성의 상체를 붙잡은 채 질질 끌며 동일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로부터 또 4시간 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이 여성은 사망 판정을 받게됐다.

자칫 남성이 이 여성을 직접적으로 살해했다고 오해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숨진 여성 A 씨의 사인은 '비외상성 뇌출혈'이었다. 머리에 충격을 받는 등 외압에 의한 사망이 아닌 것이다.

남성 B 씨는 어째서 뇌출혈로 쓰러진 A 씨를 보고도 119를 부르지 않은 채 수 시간 동안 방황한 것일까.

◇ '은밀한 만남'

재판부는 사건의 내막이 내연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봤다.

피의자 B 씨는 세종에 위치한 국책연구기관에 부원장으로 근무 중이었다. 그리고 피해자 A 씨는 B 씨의 직장 후배였다. 이들은 약 2004년부터 알고 지내면서 연구과제 등으로 협력하며 만남을 가져왔다.

그리고 2013년부터 피의자 B 씨와 피해자 A 씨의 내연 관계가 시작됐다. A 씨는 사고 당일 기준 1년간 혼자 거주 중인 B 씨의 집에 50여 회 찾아올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가 발생한 당일에도 이들의 '은밀한 만남'이 있었다. 이들이 만난 지 약 1시간이 지나고 피해자 A 씨는 화장실 속에서 홀로 뇌출혈 증상으로 구토와 함께 의식을 잃었다. 이를 목격한 B 씨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119에 신고하는 등 일을 키울 경우 A 씨와의 내연 관계가 발각돼 사회적 지위가 실추되고 가족과의 관계 또한 파탄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로 인해 B 씨는 A 씨 몸에 묻은 토사물을 씻어내기만 했을 뿐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약 4시간 동안 방치된 A 씨가 여전히 의식을 회복되지 않자 B 씨는 뒤늦게 A 씨의 상체를 붙잡고 엘리베이터를 거쳐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B 씨는 힘이 풀려 A 씨를 바닥에 넘어뜨리는 등 피해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행위까지 초래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B 씨는 곧장 응급실로 향하지 않았다. B 씨가 택한 행선지는 이들이 함께 근무하는 세종 C 기관이었다. 게다가 B 씨는 자신의 차가 아닌 A 씨의 차로 근무지까지 주행했다. 이동 중엔 A 씨의 휴대전화에 2차례 전화를 걸어 부재중 기록을 남기거나, A 씨의 휴대전화로 근무지 주차장에 주차한 A 씨 차량을 2회 촬영하기도 했다. A 씨가 자신의 집에서 쓰러졌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다. 차량에 A 씨를 방치한 채 인근을 배회한 B 씨는 17일 오전 6시 경에서야 응급실로 향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지 약 7시간 만이자, A 씨가 이미 숨진 뒤였다.

◇ 1심은 '무죄?'

하지만 1심은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를 방치한 B 씨의 행위와 뇌출혈에 따른 사망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구호조치 의무가 있으나 피해자가 응급실에 도착한 당시는 사망 후 상당 시간이 지난 것으로 보여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도 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집에서 피해자가 쓰러져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초연하게 행동한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제출된 증거만으로 피해자를 살해할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살해 고의는 합리적 의심 없이 확실해야 하나 인과관계가 의심되는 이상 피고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은 유죄로 뒤집혔다. 2심은 피의자 B 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B 씨가 119에 신고했더라면, A 씨가 살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사망 직전 B 씨의 숙소에 갔을 때까지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았고 숙소 도착 1시간 뒤 의식을 잃었다"며 "이럴 경우 의식을 잃은 것인지 잠에 든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B 씨는 피해자가 죽을 것을 인식했음에도 자신의 내연 관계가 드러나 사회적 지위 등이 실추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구호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다"며 "피해자를 사망하게 해 미필적 살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또 "B 씨는 A 씨를 차량에 집어 던진 뒤 근무지 주차장에 도착해 마치 살아있는 것 마냥 사진을 촬영했다"며 "쓰러진 지 7시간이 지나서야 병원 응급실로 갔다"고 덧붙였다. B 씨가 근무지 인근에서 쓰러진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사건을 조작했다는 얘기다.

B 씨는 항소에 나섰지만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수긍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전문심리위원의 설명이나 의견에 관한 증거법칙을 위반하거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인과관계, 부작위와 작위의 동가치성, 고의, 보증인적 지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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