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괴롭힘 부인한 가해자의 소송에…피해자 직접 항소권 인정

노무, 해고, 갑질, 괴롭힘 관련 판결

직장내괴롭힘 부인한 가해자의 소송에…피해자 직접 항소권 인정

클립아트코리아 


지난해 10월 인터넷 뉴스를 보던 백정엽(45)씨는 깜짝 놀랐다. 회사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사건은 자신이 피해자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백씨는 전혀 진행경과를 모르고 있었다.

2021년 2월 쿠팡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에서 근무하던 백씨는 노조 설립을 준비하는 노동자들이 모이는 네이버 밴드에 가입했다. 이와 관련해 상사인 ㄱ씨로부터 “조끼를 입고 근무를 하고 싶어하던데, 그런 활동을 하려면 모범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발언을 들었고 백씨는 회사쪽에 신고했지만 회사는 직장내괴롭힘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백씨는 이 사실을 노동청에 신고했고, 노동청은 직장내괴롭힘을 인정한 뒤 회사에 개선을 지도했다. 그제야 회사는 ㄱ씨에게 ‘경고' 및 ‘분리조치'를 했다.

ㄱ씨는 자신의 발언은 “직장 내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며 회사 쪽이 행한 분리조치로 인해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하지만 지노위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기각했고, ㄱ씨는 중노위의 기각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는 지난해 10월 1심에서 ㄱ씨의 손을 들어줬다.

2021년 직장내괴롭힘 신고 이후 정신적 고통이 심해 일을 잠시 쉬던 백씨는 이 모든 과정을 알지 못했다. 회사의 태도도 황당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법원이 자신들의 분리조처 등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셈인데, 이를 환영하는 입장을 배포한 것이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앞으로도 노조의 악의적인 허위 주장에 억울하게 피해 보는 이들이 없도록 직원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까지 담겼다. 백씨는 “사건 당사자인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누구라도 의견을 물어왔다면 내가 어떤 일을 당했고, 왜 분리조치가 필요했는지도 더 말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한겨레에 답답한 마음을 털어놨다.

백정엽씨가 법원에 제출한 보조참가신청서. 백정엽씨 제공
백정엽씨가 법원에 제출한 보조참가신청서. 백정엽씨 제공

1심에서 진 중노위는 항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백씨가 억울함을 다퉈볼 기회마저 사라질 상황이었다. 결국 백씨는 뒤늦게 자신도 재판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신청서를 냈고, 1심 법원은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진다”며 이례적으로 백씨의 재판 보조참가를 허용했다. 법원의 결정으로 회사가 분리조치 등 구제명령을 취소할 경우 백씨가 겪을 수 있는 불이익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직장내괴롭힘 피해를 호소한 당사자가 중노위 행정소송에서 피고 보조참가인으로 허용된 사례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백씨는 보조참가인 자격으로 항소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재판이 이어질 수 있었다.

백씨처럼 피해 당사자이면서도 관련 재판이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 차원의 피해자 의견 진술에 관한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법원은 소송에서 피해자 보호와 관련된 폭넓은 조처를 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2월 대법원은 학교폭력 관련 행정 심판·소송에서 피해자 보호 구제 방안을 강화하는 행정소송규칙 일부규칙개정안을 의결하기도 했다. 가해 학생이 행정청의 처분 등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을 피해 학생에게 안내하고, 원하는 경우 피해 학생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주요 뼈대다.

백씨 쪽 소송대리인 정병민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회사가 가해자의 입장에 서서 도리어 자신이 내린 경고와 분리조치가 부당하다고 법원에 호소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데 피해자는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1심이 그냥 진행된 것”이라며 “노동위 절차나 행정 소송에 대해서 고지를 받을 수 있고, 법원의 판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 자체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법 개정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쿠팡플필먼트서비스 쪽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겨레에 “CFS는 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억울하게 피해보는 직원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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