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괴롭힘·성희롱 신고했더니 '화해 주선?'"

노무, 해고, 갑질, 괴롭힘 관련 판결

"상사 괴롭힘·성희롱 신고했더니 '화해 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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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조사한 임원이 화해 종용…사내 소문 퍼지기도
사측, 직장내 괴롭힘·성희롱 발생 시 철저히 조사해야
조사참여자는 비밀유지의무…어길 시 과태료 처분
고용부 "현장·전문가 의견 들어 제도개선 종합적 검토"
[서울=뉴시스]

#. 3년차 직장인 A씨는 최근 계속되는 팀장의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회사 생활을 하며 큰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웃어 넘겼지만, 최근 들어 그 정도가 심해져 불쾌감을 드러냈더니 노골적으로 '왕따'를 시킨 것이다. 회식에 A씨만 부르지 않거나 중요한 일정을 A씨에게만 제대로 전하지 않는 식이다. 이대로는 더 이상 회사 생활을 할 수 없다고 느낀 A씨는 팀장을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조사를 담당한 임원은 "팀장이 사과를 하고 싶다는데, 그냥 사과를 받고 끝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화해를 종용하기도 하고, A씨가 당한 피해 내용이 사내에 소문으로 퍼져 공공연하게 팀장과의 화해를 주선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A씨는 "문제제기를 하기까지도 큰 마음을 먹어야 했는데, 2차 가해를 당하는 느낌에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는 가장 힘든 문제다. 특히 A씨처럼 권력관계에서 벌어진 피해에 문제제기 하는 것은 큰 용기를 요구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32%가 지난 1년 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를 회사나 노동조합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8.1%, 고용노동부 등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2.2%에 그쳤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입고도 10명 중 1명만 신고한다는 이야기다.

직장 내 괴롭힘은 지난 2019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추가됐다. 당시 소위 직장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갑질'을 하는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졌고,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와 조사절차, 처벌 조항 등이 빠르게 법제화됐다.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누구든지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으며, 사용자는 이를 접수하거나 인지한 경우 지체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그 사실 확인을 위해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신고인이 피신고인과의 근무장소 분리, 유급휴가 등을 요청하면 이를 보장해야 한다.

A씨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팀장이 정당한 이유 없이 A씨만 회식에 부르지 않거나 업무에서 배제했다면 충분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남녀고용평등법상 직장 내 성희롱이 될 수 있다.

다만 A씨의 경우, 팀장의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도 문제지만 그 이후 발생한 상황이 더욱 문제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조사해야 할 사람들이 팀장과의 화해를 종용하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A씨는 이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화해를 종용 내지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으며, 특히 피해 내용을 외부에 알린 사람은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우선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발생 신고를 받으면 사측은 지체 없이 조사에 착수해야 하며, 조사를 맡은 주체들은 '비밀 누설 금지'의 의무를 진다. 다시 말해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들을 피해자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 근로기준법과 별도로 A씨가 입은 피해가 상당한 경우 명예훼손 고소를 할 수도 있다.

단, 조사 주체들이 A씨의 피해 사실을 외부에 발설했다고 해서 회사가 함께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법제처는 지난해 조사 참여자의 비밀 누설 금지 의무 준수에 대한 사용자의 감독 의무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사실상 회사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고용부는 최근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부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발생 양태나 사례도 다양해지고 있지만, 괴롭힘 개념이 포괄적이고 추상적임에 따라 특정 행위가 괴롭힘에 해당되는지 등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빈번해지고 당사자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며 "현장과 전문가 등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합리적인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용자의 괴롭힘 조사시한 설정과 결과 통보 의무, 입증·판단 용이성을 위한 사업장 내 신고시한 설정, 분쟁·갈등 지속 시 조정·중재 지원 등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돼왔다"며 "제도 개선 논의 시 같이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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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과 국회팀을 거쳐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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