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하려 요트타고 3만㎞… 대양 건너 권총들고 나타난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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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9.04. 오후 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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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0일 오후 세종시의 한 아파트. 집에 있던 40대 여성이 자녀의 과외 교사를 맞이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열린 현관문을 통해 밀치고 들어온 사람은 반자동 권총 ‘글록17’을 든 한모(당시 46세)씨. 과거 결혼까지 생각했던 전 애인의 언니 김모씨를 찾아온 한씨는 “내가 여기 올지 몰랐지. 니들 다 쏴죽이려고 여기 왔다. 전부 죽여버리겠다”면서 총구를 겨눴다.

한씨가 9㎜ 실탄이 들어 있는 탄창을 보여주고 협박하며 헤어진 애인을 찾았지만, 김씨는 “(동생은) 병원에 있고, 면회가 어렵다”며 차분히 대응했다. 식탁에 마주앉은 언니는 “올 줄 알았다. 17일 여수에서 (요트) 사고 났잖아”라며 한씨와 2~3시간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 중 한씨는 중간 중간 총기로 김씨를 위협했지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신고하지 않겠다”는 김씨의 말을 듣고 집을 나온 한씨는 몇 시간 뒤 스스로 세종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했다.

2020년 9월17일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화물선과 충돌하는 사고가 난 한씨의 요트. /여수해양경찰서

◇사업까지 정리하며 사랑했는데…

한씨는 지난 2019년 3월 만남 주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김모(당시 41세)씨를 만났다. 한집에서 지내기도 한 이들은 결혼까지 생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같은 해 6월 크게 다투며 사이가 멀어졌다. 한씨는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알리고 결혼 성사를 위해 본인의 생계를 책임지던 펜션을 정리해 만든 2억4900만원을 김씨에게 건넨 상황이었다.

다툼 이후 합의점을 찾지 못한 한씨와 김씨는 결국 헤어졌다. 돈도 돌려받지 못하고 김씨 언니의 반대로 헤어지게 됐다는 생각이 들자, 한씨의 마음에 김씨와 그의 언니에 대한 원망이 쌓이게 됐다.

◇요트 세계 일주 떠난 길…형사 고소당하자 보복 결심

3만㎞. 한씨가 김씨 언니에게 권총을 겨누기 사흘 전까지 요트를 타고 이동한 거리다. 한씨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기 전인 2019년 12월 2일 인천공항을 통해 크로아티아로 출국했다. 요트로 항해하며 세계 일주를 하는 꿈과 같은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크로아티아에서 15t급 요트(11인승)를 구입한 한씨는 이듬해 2월17일 스플리트항에서 항해를 시작했다. 스페인과 하와이, 괌, 필리핀을 거쳤다. 한씨는 출항 전 크로아티아에 머물면서 ‘김씨가 금전을 목적으로 결혼을 약속한 뒤 헤어졌다’는 취지의 허위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또 김씨의 언니에게 “(김씨의) 사진, 동영상을 전부 유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1억원을 돌려달라”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씨는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김씨 측이 주거 침입, 감금, 상해 등으로 자신을 형사 고소한 사실을 항해 중 알게 된 한씨는 보복을 결심했다. 한국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경유지인 필리핀에 들러 반자동 권총 1정과 실탄 100발을 500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한씨는 지난해 9월 17일 전남 여수 앞바다에 도착했다. 도중에 화물선과 충돌하는 사고를 겪었다.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지만, 한씨는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 9월 20일 권총을 들고 택시를 타고 세종시로 향했다.

세종경찰서 전경./연합뉴스

◇“살인 고의 없었다”…1심 법원은 징역 5년 선고

살인미수와 살인예비, 명예훼손, 총포·도검·화약류 등 안전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씨는 “살해할 고의는 없었고 실행에 착수하지도 않았다”면서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 권총은 해적 퇴치용으로 구입했고, 김씨의 언니에게 권총을 보여주긴 했지만, 가슴과 관자놀이를 향해 겨눈 사실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씨가 필리핀에서 권총을 구매한 다음 날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녀와 함께 세상을 떠나면 된다’는 메모를 남겼고, 한국 입국을 앞둔 시점에 권총을 구매한 점, 피해자가 한씨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 등을 이유로 들며 한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전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박헌행)는 지난달 한씨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한씨의 행위로 피해자 가족들은 트라우마에 현재까지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서 “또 총기 규제, 입국 관리, 세관 업무에 관한 국가 시스템까지 무시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씨와 검찰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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