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컷] 대리기사 가고 잠깐 잡은 핸들…무죄인 경우도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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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04. 오전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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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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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지난달 26일 배우 박중훈이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아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그는 오후 9시 30분께 대리운전기사를 불러 아파트 입구까지 온 뒤 기사를 돌려보내고 직접 운전했는데요.

박씨는 아파트 입구부터 지하 주차장까지 100m가량 음주운전을 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이렇게 대리기사를 부르고도 잠깐 운전대를 잡았다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경우는 종종 일어납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대리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게 주차해 다시 하려거나, 주차를 꼭 하는 장소에 세우고 싶은 사람 등 여러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경일 법무법인 엘엔엘 변호사(교통사고 전문)도 "대리기사들이 주차를 삐딱하게 해놓거나 도로에 세워두고 가버리든지, 아니면 아파트 입구까지만 세워놓고 가는 등 결국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하게끔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일부는 공감할 수도 있는 여러 상황이 있다 보니 누리꾼들도 박중훈 사례와 관련 '어찌 됐든 간에 음주운전을 한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도 '대리운전 기사가 주차해야 했다', '대리기사를 배려해서 한 행동이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죠.

그런데 유사한 '잠깐'의 음주운전 상황이더라도 법원 판결은 차이가 있는데요.

지난해 7월 부산에서 대리운전 기사를 부른 뒤 약 5m 정도 차량을 이동시킨 50대 남성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됐습니다.

대리기사를 기다리는 사이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직접 5m가량 차를 몰아 주차한 이 남성은 지난달 벌금 1천200만 원을 선고받았는데요.

또 2년 전 대리기사가 주차를 거부하자 술 취한 상태로 10여m를 운전한 50대 남성은 지난해 1천1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기도 했죠.

하지만 이 같은 음주운전이 무죄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6월 한 40대 남성이 대리기사가 차도에 세워둔 차량을 주차장까지 10m가량 운전했는데요.

이를 본 대리기사는 그의 영상을 찍어 음주운전으로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어서 긴급 피난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는데요.

지난해 3월에도 다른 차량의 진로 공간 확보를 위해 음주 상태에서 도로에 세워둔 차를 약 3m 운전한 행위 역시 긴급피난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원칙적으로 음주운전은 도로이든 그 외 장소이든 도로교통법상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이처럼 음주운전 경위 등에 따라 형법상 위법성 조각사유 중 하나인 긴급피난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형법 제22조 1항에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정 변호사는 "긴급피난이란 그 당시 교통에 방해가 돼야 한다"며 "2차 사고를 방지하고자 대로변에 있는 차량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는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단지 차량이 도로에 있어 옮기는 부분까지 긴급 피난으로 인정되진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청 관계자도 "가족 중 위중한 사람이 발생했는데 택시를 부를 상황은 안되고 그 차가 아니면 병원에 갈 수 없을 때 (음주 상태라도) 운전을 안 할 수 없다"며 "그런 경우 음주운전 처벌을 못 하는 경우가 가끔 생기는데, 정당성과 시급성 등이 인정돼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아울러 대리기사 역시 술 취한 고객 사정을 악용해 음주운전을 유도하거나, 음주운전을 할 게 뻔히 보이는 데도 방조한 경우 음주운전 방조죄로 처벌받거나 일반 교통 방해죄가 성립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음주운전.

지난 2018년 12월 이른바 '윤창호법'이 시행되며 처벌이 강화됐는데요.

'짧은 거리니까 괜찮겠지'란 방심으로 잠깐 운전대를 잡은 것이 화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은정 기자 정수인 인턴기자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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