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판] 대리기사 불렀더니 만취남이…대리 음주운전? '황당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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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20. 오전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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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정영희 법률N미디어 에디터]
/사진=SBS 뉴스 캡처
술을 마셔 대리기사를 불렀더니 오히려 만취한 사람이 찾아와 음주운전을 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지난 3일 카카오T 대리 어플리케이션(앱)으로 대리기사를 불렀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습니다. 술에 잔뜩 취한 B씨가 운전을 하겠다며 도착한 겁니다.

B씨는 운전대를 잡고 실제로 수십미터를 운행했으나 A씨와 의사 소통이 전혀 되지 않을 만큼 취한 상태였습니다. 결국 A씨는 경찰을 불렀고 B씨는 음주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당시 B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대리운전업체 측은 B씨의 계정을 정지하는 한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리운전 중개업체도 책임 있을까

A씨가 B씨의 음주 사실을 사전에 알아차린 덕분에 다행히 큰 사고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A씨가 B씨의 만취 상태를 모르고 차가 출발해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면 B씨를 소개한 대리운전 중개앱 회사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과실책임주의에 따라 손해를 발생시킨 사람, 즉 이 사례에서는 음주 상태로 대리운전을 한 B씨에게 배상 책임이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 대리기사를 고용한 회사도 책임을 분담하기도 합니다.

이를 사용자 책임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해 특정 사무에 종사하게 한 사용자는 피용자가 그 사무를 집행하면서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배상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사용자가 피용자의 선임 및 그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한 때, 또는 상당한 주의를 했음에도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B씨 사례의 경우 설령 사고가 났더라도 대리운전 앱 운영회사에게는 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음주운전 자체가 과실이 아닌 명백하게 고의적인 B씨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재판부는 카카오T 대리 측이 사고 시 사용자책임을 부담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회사는 고객이 앱을 통해 대리운전을 요청하면 고객 주변의 기사들이 수락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회사는 고객이 입력한 정보를 기사들에게 전송하는 역할만 수행할 뿐 등록된 기사들에게 대리운전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지시할 권한이 없다고 본 건데요. 사측이 기사들의 출·퇴근 시간을 확인하거나 근무여부·근무태도 등을 평가하지 않은 점도 고려했을 때 애초에 구체적인 근로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리기사가 음주운전 사고 내면

대리기사가 운전 중 사고를 내면 보상은 어떻게 이뤄질까요? 우선 대리운전 회사가 가입한 보험으로 보상처리됩니다. 그러나 대리운전 회사가 가입한 보험은 차량 수리비만 보장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차를 수리하는 동안 사용할 렌터카 이용료나 영업손실, 차량 시세 하락 손해 등의 자동차간접손해보험금은 지급되지 않습니다. 만일 차주가 이런 부분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다면 개인 자동차보험을 이용하거나 대리운전 회사에 해당 금액을 따로 청구해야 합니다.

단순 대물사고가 아닌 대인사고라면 차주 책임도 발생합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자기를 위해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 운행으로 다른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부상하게 한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3조) 이에 따라 대리운전으로 인한 사고에 대한 특약에 가입하지 않은 이상, 차주는 자신의 보험으로 제3자의 피해를 물어줘야 합니다.

판례 또한 대리운전 중 차주를 '자동차의 운행자'로 규정합니다. 대법원은 "대리운전자의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차량사고의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자동차의 소유자 또는 보유자가 객관적, 외형적으로 위 자동차의 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 1994. 4. 15. 선고 94다5502 판결)

그러나 B씨처럼 음주 상태로 대리운전을 시도했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대리운전 업체의 자동차보험 약관에는 음주사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기사의 음주는 회사의 면책 규정 중 하나라는 이유로 보장이 어렵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카카오T 대리 앱으로 부른 대리기사가 음주운전을 했다가 만취 사고를 내 차주가 모든 책임을 떠안은 사례도 있습니다.

대리운전과 보험 업계 사이 일종의 사각지대인 셈인데요. 미비한 법적 제도의 보완과 업체 측의 철저한 교육이 병행돼야 할 시점입니다.

글: 법률N미디어 정영희 에디터


정영희 법률N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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