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군법무관들 “남친 돌싱됐네”…공군 이 중사 사망 2차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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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4.30. 오후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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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추모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성추행 피해로 극단적 선택에 이른 공군 이예람 중사의 사망 이후에도 군 내부에서 끊임없는 2차 가해가 이뤄졌던 정황이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로 확인됐다.

국민일보가 30일 확보한 인권위의 ‘군대 내 성폭력에 의한 생명권 침해 직권조사’ 결정문에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결정문에 따르면, 이 중사의 국선변호인을 맡았던 공군 A중위의 군법무관 동기 3명은 지난해 6월 1일 A중위와 함께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이 중사의 신상정보를 공유했다.

이 카톡방에서 “남친은 하루만에 돌싱됐네”, “혼인신고가 개트롤(‘허튼짓’의 의미)이네, (혼인신고)해서 엿 먹인 게 아닐까, 이해가 안 되네” 등의 메시지가 오갔다.

이들은 이 중사가 같은 해 5월 21일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마친 날 저녁, 관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모욕적인 메시지를 나눈 것이다.

이 중사의 원 소속부대에서도 2차 가해가 이뤄졌던 정황이 밝혀졌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군검사 B중위는 같은 해 4월 16일 이 중사의 자살 시도를 인지하고, 부대 관계자 2명에게 “XX(욕설 단어) 강제추행” “피해자 자살 시도” “차에 탓던(‘탔던’의 오타로 기재) 상사 새끼가 피해자 남편(’혼인 신고 전의 남자 친구’ 지칭) 불러 합의 종용” 등 내용을 문자 메시지로 공유했다.

성추행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담당 군검사가, 이 중사가 심각한 불안정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이 중사를 둘러싼 상황을 주변에 전달하는 등 2차 가해에 앞장선 것이다.

국선변호인을 맡았던 A중위의 단체 카톡방 대화 내용과 B중위의 문자 메시지 내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권위는 “피해자(이 중사)는 원 소속부대에서 이미 신고 무마·협박 등 2차 피해를 입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출을 간 부대에서조차 피해자의 성추행 피해 사실이 부대 전반에 알려져 있던 사실 등에 크게 절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는 부대 측으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심리적 안정을 잃고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은의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포함해 다른 성범죄 사건을 맡아 피해자를 지원·변호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군법무관들이 피해자(이 중사)를 모욕하는 대화를 나눴다”며 “피해자가 군 내부에서 어렵게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 느꼈을 좌절감 등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공군 20전투비행단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관련 군 내 성폭력 및 2차 피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된 뒤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모씨가 방청석을 나가며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이 중사 부친 “특검에서 샅샅이 수사해야”

지난해 8월 직권조사에 착수한 인권위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3월 31일 “국방부는 공군 사건 관련 총 40명을 입건해 15명을 기소하고 25명에 대해 징계 및 경고 조치를 했지만, 국선변호인 및 그의 동료인 법무관들의 SNS상 대화 내용과 20전투비행단 군검사 부대 관계자들의 SNS상 대화 내용은 수사 중인 사항을 외부에 노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다”며 국방부에 추가 조사를 권고했다.

국선변호인을 맡았던 A중위는 지난해 10월 직무유기 등 혐의로 국방부검찰단에 의해 기소됐지만, 지난 3월 군사법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방부 검찰단은 유족들이 제기해왔던 2차 가해 혐의에 대해선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군검사 B중위 역시 당초 직무유기 등 혐의로 수사를 받았지만 국방부 검찰단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인권위 직권조사에서 2차 가해 정황이 추가로 확인된 만큼, 이들은 향후 꾸려질 이 중사 사망 사건 조사를 위한 특검에서 다시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중사의 부친은 “그동안 군에서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가 이뤄진 결과,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 등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며 “특검에선 관계자들의 2차 가해 정황 등을 샅샅이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군에 집중된 군 성범죄 피해

인권위가 이번 직권조사 과정에서 전국의 각 군 부사관 및 장교 2730명(여성 227명·남성 2503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군대 내 성 관련 피해는 여군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군대 내에서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은 2.2%로 조사됐다. 남성은 0.3%를 기록했다.

여군의 성폭력 피해 경험이 남성보다 약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희롱 피해 경험은 여성 32.1%, 남성 8%로 4배 차이를 보였다. 괴롭힘 경험은 여성 42.9%, 남성 22.3%로 여성 피해가 약 2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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