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학생들과 신체접촉 신빙성 높아"...자살 교사 유족 손배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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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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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상담일지 근거로 3차 진술·탄원서엔 의문 제기... 행정소송 판결 등과 배치

[윤근혁 기자]

 
 판결문에 나온 D학생의 심리상담일지.
ⓒ 전주지법

 
 판결문에 나온 E학생의 심리상담일지.
ⓒ 전주지법

'여자 중학생들에 대한 부적절한 신체접촉과 체벌' 의혹을 받다가 징계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의 유족이 낸 손해배상 소송이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판결문 내용이 해당 교사에 대한 '공무상 사망'을 인정한 기존 행정법원 판결과 '직위해제 취소'를 결정한 기존 교원소청심사위 결정 취지와는 차이를 보여 눈길을 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 손 들어준 '반전' 판결, 이유는?
 
6일, <오마이뉴스>는 전북 부안 A중학교에 근무했던 교사 B씨(2017년 8월 5일 사망) 유족이 김승환 교육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박근정)가 판시한 판결문을 입수해 살펴봤다.
 
재판부는 지난 4월 28일 판결 선고에서 유족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도 유족이 부담토록 했다.
 
유족들은 재판부에 "여학생들은 당초 B씨가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내용의 1차 진술서를 작성했지만, 이후 'B씨가 교육 목적에서 신체접촉을 한 것'으로 진술을 번복하며 3차 진술서 및 탄원서를 작성했다"면서 "경찰이 B씨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는데도 전북교육청 산하 부안교육지원청과 학생인권센터가 직위해제와 신분상 처분 등을 결정해 B씨가 고통을 받다가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손해배상금으로 김 교육감 등에 대해 모두 4억 4700여만 원을 요구했다.
 
앞서 A중학교 전체 여학생 8명 가운데 대부분은 지난 2017년 4월 학교와 경찰조사 과정에서 'B씨가 수업시간에 이유 없이 피해 여학생들의 손, 코, 볼, 어깨, 등, 팔뚝, 허벅지를 반복적으로 만졌다'는 1, 2차 진술서를 두 차례 낸 바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후 경찰 조사 과정 등에서 "B씨가 수업 집중을 위해 장난을 친 것이며 성적 수치심을 느낄만한 행동은 아니었다"는 내용을 담은 3차 진술서를 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해당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경찰은 내사종결서에 "B씨가 피해자들의 신체를 만진 것은 사실이나 피해자들이 그것에 대해 장난으로 느꼈다"고 적었다. 피해 학생들은 전북교육청에 B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이렇게 학생들의 진술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주목한 것은 전문상담센터가 피해 학생들을 지난 2018년 8월부터 6개월간 심리상담한 뒤 작성한 심리상담 일지였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상담일지 내용에 의하면 학생 3명은 'B씨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분명히 있었고 탄원서는 B씨와 원고(B씨 부인)의 요구로 사실과 다르게 써준 것에 불과한데도 언론에서는 탄원서 내용이 진실로 보도되어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위와 같은 (피해 학생들의) 진술은 전문상담사와 이루어진 것으로서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학생이 자신의 심리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상담 과정에서 구태여 거짓말을 할 특별한 동기나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이에 반해 피해 학생들의 탄원서에는 상당한 의문이 든다"고 봤다.

재판부, 상담일지 속 학생들 진술에 주목 
 
판결문에 나온 상담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일지는 전문상담사가 피해 학생들과 6개월간 만날 때마다 작성한 내용이다. 
 
"자신들이 쓴 진술서가 진실이고, 탄원서는 사모님(B씨 부인)과 선생님(B씨)이 자꾸만 써달라고 부탁해서 써준 것뿐인데 기자들은 알지도 못하고 기사를 쓰고 탄원서만 인터넷상으로 돌아다니고 있으면서 자신들을 나쁜 사람으로 모는 것 같다고 말함."(2018년 12월 4일, D학생 상담일지)
 
"맨 처음 썼던 것(1, 2차 진술서)이 진짜이고 나중에 탄원서는 사모님과 선생님(B씨)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쓴 것이라고 함."(2018년 9월 25일, E학생 상담일지)
 
"이번 경우에도 아이들이 받은 부당함에 자신이 당한 일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자신들이 선생님을 죽인 것처럼 표현해서(언론보도 등이 되어) 매우 괴롭다고 함."(2018년 9월 13일, C학생 상담일지)

 
재판부도 진술 내용이 바뀐 3차 진술서와 탄원서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3차 진술서와 관련 "최초 문제제기 때 예상하지 못했던 파장으로 중압감을 느끼게 된 상황에서 B씨가 사과하자 이를 받아들여 용서하기 위한 취지로 풀이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탄원서는 B씨의 신체접촉, 체벌 여부에 관한 증거가치가 크지 않다"고도 했다.
 
결국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북교육청이) 피해 여학생들의 1차 진술서를 신뢰한 것에 잘못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분리를 원하는 피해학생들 중심의 보호 조치가 필요함은 분명하다. B씨에 대한 직위해제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고들(김승환 교육감 등)의 B씨에 대한 조사 개시 및 과정, 절차, 판단 및 이 사건 직위해제 처분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행위라는 점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원고들(유족들)의 청구는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한편, 서울행정법원은 '공무와 B씨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인사혁신처장의 유족급여 부지급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유족의 소송 제기에 대해 2020년 6월 19일 '처분 취소'를 선고한 바 있다. 교원소청심사위도 유족 측이 낸 '전북 부안교육지원청의 B교사에 대한 직위해제 처분 취소' 청구에 대해 "법리를 오해하여 직위해제 처분했다"면서 올해(2021년) 3월 24일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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