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국가 배상 인정…“초동수사 극히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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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02. 오후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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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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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당시 경찰의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재판장 이관용)는 오늘(2일), 피해자 정 모 씨의 부모·형제 등 유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국가가 정 씨의 부모에게는 각 2천만 원, 형제 3명에겐 각 5백만 원 등 모두 5천5백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사고 당시부터 지연 이자를 계산하면 약 1억 3천만 원가량이 됩니다.

재판부는 “여러 의문점에 대해서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이 사건은 경찰이 ‘교통사고’로 성급히 판단해서 현장 조사와 증거 수집을 하지 않고 증거물 감정을 지연하는 등 극히 부실하게 초동수사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저히 불합리하게 경찰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해서 위법하다”며 “국가는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또,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국가 측 주장에 대해선 “국가가 자기의 책임으로 빚어진 권리 장애 상태에 대해 이제 와서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 아니냐고 하는 건 정의와 공평의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선고가 끝난 뒤 정 씨의 아버지는 “최근 ‘구미 3살 여아 사망 사건’처럼만 수사했다면 이 사건은 여기까지 올 것도 없었다”며 “우리가 자료를 갖다줘도 (수사를) 안 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유족들을 대리한 박연철 변호사는 “이 사건의 진범이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못해서 형사적으로 아무런 위로를 못 받았다”며 “재판부에서 나라의 책임을 인정해준 것은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를 보호하는 국가의 책임에 대해 조금 더 진전된, 심도 있는 판결로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1998년 10월 17일 귀가 중이던 정 씨는 대구 구마고속도로에서 화물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당시 경찰과 검찰은 사건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정 씨 속옷에서 정액이 검출됐는데도 다른 증거가 없다며, 단순 교통사고로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이후 15년 만에 스리랑카인 A 씨의 DNA가 정 씨 속옷에 남은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며 수사가 이뤄졌고, A씨는 2013년 공소시효가 유일하게 남은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강도죄의 증거가 부족하고 강간죄의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2017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고, 같은 해 7월 A 씨는 스리랑카로 추방됐습니다.

A 씨에 대한 처벌 방안을 강구하던 검찰은 강간죄의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스리랑카 당국에 사법공조를 요청해, A 씨는 2018년 성추행죄로 스리랑카 현지에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A 씨의 유족들은 경찰과 검찰이 우범지역 범죄 예방을 게을리하고 부실한 초동 수사로 사건을 단순한 교통사고로만 처리했다며, 2017년 9월 6억 4천여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최유경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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