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못 지나간다” 펜스로 골목길 막았다…‘주위토지통행권’ 침해!

입력 2020.02.29 (09:00) 수정 2020.02.29 (13:5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땅이 인근 주민들의 통행로로 이용되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이 통로, 주인 마음대로 막아도 될까요? 이번에는 공사 차량이 드나드는 통로가 자신의 소유 토지에 있단 이유로 길을 못 쓰도록 막은 땅 주인에 대해 법원이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물도록 한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 길은 내 땅"…공사 출입로에 주차·철제 펜스까지

A씨는 서울 관악구에 지하 2층, 지상 14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신축하고 있었습니다.

이 건물을 짓고 있던 부지와 인접 토지 사이에는 통행로(현황도로)가 있었는데요, 공사 차량은 이 통행로로 공사장을 오갔습니다. 그런데 이 통행로가 위치한 토지 소유자의 아들이었던 B씨는 이 샛길이 '개인 소유'라고 주장하며 원고의 공사를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B씨는 2015년 11월부터 수십 일간 통행로에 전처 소유의 렉스턴 차량을 세워둬 공사차량이 통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2016년 2월에도 통행로에 철제 펜스를 수십 일간 설치해 공사 차량이 통행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참다 못한 A씨는 B씨 땅에 위치한 통행로를 공사현장 진입로로 쓰지 않고, 신축 부지에서 기존 토지와 접하는 부분을 따로 진입로로 이용한 끝에 결국 건물을 완공, 2016년 3월 사용승인을 받았습니다.

B씨는 A씨의 신축공사를 방해했단 혐의로 일반교통방해 등 혐의로 2017년 재판에 넘겨져 1심부터 대법원까지 벌금 800만 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건물이 완공되자 A씨는 2018년 "공사가 지연돼 그 지연된 동안 신축된 건물을 직접 운영하거나 제3자에게 임대하는 등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손해를 입었다"며 B씨를 상대로 우선 2억 원을 일부 배상하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B씨는 "A씨가 이 사건 통행로가 아니라 공사 부지에 인접해 있는 다른 도로(A씨가 공사현장 진입로로 이용한 도로)를 이용해 공사를 계속 진행할 수 있었던 이상 자신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2016년 자신이 통행로 부분에 대한 공사금지가처분을 신청해 법원이 일부 인용했다"고도 맞섰습니다.

■법원 "건물 짓는 사람 주위토지통행권 침해…2200만 원 배상"

이 사건의 쟁점은 B씨의 손해배상책임이 있는지, 또 책임이 있다면 배상 액수는 얼마인지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법원은 "B씨가 종래부터 인근 주민들 통행로로 이용되던 이 사건 통행로 출입을 막아 A씨의 공사를 방해한 행위는, 이 사건 통행로에 관해 주위토지통행권을 갖는 A씨에 대해 정당한 신축공사업무를 방해하는 것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내 토지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할 수는 있겠으나, 기존에 통로로 토지를 이용해온 인근 주민들에겐 '주위토지통행권'이란 게 생깁니다. 어느 토지가 타인 소유의 토지에 둘러싸여 공로에 통할 수 없는 경우뿐만 아니라, 이미 기존의 통로가 있더라도 그것이 당해 토지의 이용에 부적합해 실제로 통로로서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 등에, 이 통행로를 계속해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법원은 B씨의 주장에 "A씨가 다른 도로를 통해 공사를 계속하긴 했으나 B씨 토지도 함께 진입로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더 신속하게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고, 다른 도로 방향으로 신축건물 외벽이 설치된 이후론 B씨 토지 통행로를 이용할 필요성이 더 높아졌다고 보인다"며 "B씨의 공사금지가처분이 인용된 것도 A씨의 주위토지통행권이 인정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A씨가 통행로로 사용하는 걸 넘어 통행로 지하에 하수관을 매설하고 포장공사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A씨가 B씨의 민원제기에 못 이겨 통행로를 차량 진입로로 사용하지 않는 내용으로 건축설계변경을 추진하려고 했고, 정당한 소유권을 행사한 것이란 B씨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어 불법행위 성립을 배제하기 어렵단 것이었습니다.

법원은 다만 B씨가 A씨의 공사업무를 방해한 기간은 차량을 주차한 20일간, 철제 펜스를 설치한 50일간 등 총 70일이고, A씨가 통행로를 이용할 순 없었지만 공사부지에 면한 도로를 이용해 공사를 계속 진행할 수 있었으므로 공사가 전면 중단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제한'을 받게 된 것인 점을 고려해 B씨의 책임을 20%로 제한해 2200만 원의 손해배상을 명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판결남] “못 지나간다” 펜스로 골목길 막았다…‘주위토지통행권’ 침해!
    • 입력 2020-02-29 09:00:42
    • 수정2020-02-29 13:52:23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땅이 인근 주민들의 통행로로 이용되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이 통로, 주인 마음대로 막아도 될까요? 이번에는 공사 차량이 드나드는 통로가 자신의 소유 토지에 있단 이유로 길을 못 쓰도록 막은 땅 주인에 대해 법원이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물도록 한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 길은 내 땅"…공사 출입로에 주차·철제 펜스까지

A씨는 서울 관악구에 지하 2층, 지상 14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신축하고 있었습니다.

이 건물을 짓고 있던 부지와 인접 토지 사이에는 통행로(현황도로)가 있었는데요, 공사 차량은 이 통행로로 공사장을 오갔습니다. 그런데 이 통행로가 위치한 토지 소유자의 아들이었던 B씨는 이 샛길이 '개인 소유'라고 주장하며 원고의 공사를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B씨는 2015년 11월부터 수십 일간 통행로에 전처 소유의 렉스턴 차량을 세워둬 공사차량이 통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2016년 2월에도 통행로에 철제 펜스를 수십 일간 설치해 공사 차량이 통행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참다 못한 A씨는 B씨 땅에 위치한 통행로를 공사현장 진입로로 쓰지 않고, 신축 부지에서 기존 토지와 접하는 부분을 따로 진입로로 이용한 끝에 결국 건물을 완공, 2016년 3월 사용승인을 받았습니다.

B씨는 A씨의 신축공사를 방해했단 혐의로 일반교통방해 등 혐의로 2017년 재판에 넘겨져 1심부터 대법원까지 벌금 800만 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건물이 완공되자 A씨는 2018년 "공사가 지연돼 그 지연된 동안 신축된 건물을 직접 운영하거나 제3자에게 임대하는 등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손해를 입었다"며 B씨를 상대로 우선 2억 원을 일부 배상하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B씨는 "A씨가 이 사건 통행로가 아니라 공사 부지에 인접해 있는 다른 도로(A씨가 공사현장 진입로로 이용한 도로)를 이용해 공사를 계속 진행할 수 있었던 이상 자신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2016년 자신이 통행로 부분에 대한 공사금지가처분을 신청해 법원이 일부 인용했다"고도 맞섰습니다.

■법원 "건물 짓는 사람 주위토지통행권 침해…2200만 원 배상"

이 사건의 쟁점은 B씨의 손해배상책임이 있는지, 또 책임이 있다면 배상 액수는 얼마인지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법원은 "B씨가 종래부터 인근 주민들 통행로로 이용되던 이 사건 통행로 출입을 막아 A씨의 공사를 방해한 행위는, 이 사건 통행로에 관해 주위토지통행권을 갖는 A씨에 대해 정당한 신축공사업무를 방해하는 것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내 토지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할 수는 있겠으나, 기존에 통로로 토지를 이용해온 인근 주민들에겐 '주위토지통행권'이란 게 생깁니다. 어느 토지가 타인 소유의 토지에 둘러싸여 공로에 통할 수 없는 경우뿐만 아니라, 이미 기존의 통로가 있더라도 그것이 당해 토지의 이용에 부적합해 실제로 통로로서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 등에, 이 통행로를 계속해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법원은 B씨의 주장에 "A씨가 다른 도로를 통해 공사를 계속하긴 했으나 B씨 토지도 함께 진입로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더 신속하게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고, 다른 도로 방향으로 신축건물 외벽이 설치된 이후론 B씨 토지 통행로를 이용할 필요성이 더 높아졌다고 보인다"며 "B씨의 공사금지가처분이 인용된 것도 A씨의 주위토지통행권이 인정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A씨가 통행로로 사용하는 걸 넘어 통행로 지하에 하수관을 매설하고 포장공사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A씨가 B씨의 민원제기에 못 이겨 통행로를 차량 진입로로 사용하지 않는 내용으로 건축설계변경을 추진하려고 했고, 정당한 소유권을 행사한 것이란 B씨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어 불법행위 성립을 배제하기 어렵단 것이었습니다.

법원은 다만 B씨가 A씨의 공사업무를 방해한 기간은 차량을 주차한 20일간, 철제 펜스를 설치한 50일간 등 총 70일이고, A씨가 통행로를 이용할 순 없었지만 공사부지에 면한 도로를 이용해 공사를 계속 진행할 수 있었으므로 공사가 전면 중단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제한'을 받게 된 것인 점을 고려해 B씨의 책임을 20%로 제한해 2200만 원의 손해배상을 명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