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세 줄이려 집 한채 더 산다... 규제가 만든 ‘황당 절세법'

입력
수정2021.07.12. 오후 1:31
기사원문
김아사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다주택자 ‘일시적 2주택 특례' 활용
인천과 서울 송파구에 매수한 지 각각 9년과 5년 된 아파트를 보유한 김모씨는 건물 투자를 위해 두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하지만 두 채를 그냥 팔면 양도세만 6억원이 넘는 상황. 양도세 ‘폭탄’을 피하기 위한 김씨의 선택은 3주택자가 되는 것이었다. 강원도 원주의 공시가 1억 미만 아파트를 전세 끼고 2000만원에 사들인 것이다. 김씨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종부세가 대폭 강화된 마당에 세무사가 ‘세금 줄이려면 집을 한 채 더 사라'고 했을 땐 어리둥절했다”며 “하지만 덕분에 양도세가 2억원 가까이 줄게 됐다”고 말했다.

다주택자와 단기 거래자에 대한 양도세 인상안 시행을 하루 앞둔 31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새로운 양도세제는 1년 미만을 보유한 주택을 거래할 때 양도세율을 기존 40%에서 70%로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1년 이상 2년 미만을 보유한 주택에 적용되는 세율은 기본세율(6∼45%)에서 60%로 올라간다. 2021-05-31/연합뉴스

다주택자들이 양도세를 줄이기 위해 저가 주택을 추가 매수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양도세 중과(重課) 등 다주택자 규제가 심해지자 등장한 신종 절세법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최근 비(非)규제지역을 중심으로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 거래가 급증한 것도 이런 다주택자의 ‘편법 절세’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다주택자 양도세 규제의 불똥이 엉뚱하게 튀어 서민 보금자리인 저가 아파트 시장을 투기판으로 변질시켰다”고 말했다.

◇양도세 줄이려 3주택자 된다

양도세 중과 대상 다주택자인 김씨가 2억원 절세를 하게된 비밀은 ‘일시적 2주택’ 특례에 있다. 현 시세를 기준으로 김씨가 보유한 아파트의 양도차익은 인천 아파트가 4억원, 서울 아파트가 13억원이다. 이들을 그냥 처분하면 각각 2억2000만원과 3억9000만원을 양도세로 내야 한다. 인천 아파트를 판 후 2년을 기다렸다가 서울 아파트를 팔 경우 일부 비과세를 적용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원주 아파트를 사들인 뒤 인천과 서울 아파트를 차례로 팔면 2년을 기다리지 않고도 양도세가 4억1000만원으로 감소한다.

2주택자 김모씨의 양도세 시뮬레이션

이 경우 3주택자가 된 김씨는 인천 아파트를 팔 때 양도세를 3000만~4000만원 정도 더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인천 아파트 처분 후 일시적 2주택자(서울 아파트+원주 아파트)가 되면서 서울 아파트를 팔 때 매도금액의 9억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양도차익이 큰 서울 아파트를 팔 때 일시적 2주택 특례를 활용하는 것이다. 2000만원을 들여 산 원주 아파트 덕분에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서울 아파트의 양도세를 대폭 줄이는 셈이다. 여기에 비규제지역에 있어 실거주 의무가 없는 원주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추가 이익도 챙길 수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현행법을 놓고 보면 이런 식의 절세를 불법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했다. 정부 입장에선 다주택자의 ‘꼼수 절세’를 막기 위해 공시가 1억원 이하 아파트 거래에 규제를 가할 경우 서민 실수요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어 난감한 상황이다. 기획재정부는 이 경우 서울 아파트의 보유 계산 기점을 취득일이 아닌 인천 아파트의 매도 시점 이후로 하는 유권해석을 내놨다며, 올해 부턴 이런 방법을 이용하면 서울 아파트 매도 시 과세 대상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유 기간 계산 관련 조문에 ‘일시적 2주택은 제외한다'는 내용이 있어 종전 주택(서울 아파트)은 이에 적용을 받지 않는걸로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재부의 유권해석을 두고 소송 등이 진행될 경우 이에 대한 다툼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서민 실거주자만 피해

다주택자의 ‘절세용 상품’이 된 공시가 1억원 이하 아파트는 최근 “매물이 없어서 못 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거래가 활발하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충남 아산시 배방읍 ‘배방삼정그린코아’는 상반기에만 300가구가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 단지 전용 47㎡는 올해 공시가격이 7600만원 정도이다.

매매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가격도 강세다. 경기도 시흥 월곶동 ‘풍림아이원 1차’ 전용 32㎡는 올해 초 실거래가는 1억1000만~1억2000만원 정도였는데, 6월 말엔 2억2500만원에 팔렸다. 강원도 원주시 명륜동 ‘단구1단지’ 전용 39㎡는 올해 초 7200만원이던 실거래가가 지난달 1억원까지 치솟았다. 원주의 한 공인중개사는 “서울에서 집을 사겠다는 문의가 종종 오는데, 실거주용은 거의 없고 대부분 세금 줄이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1억원 안팎의 저렴한 보금자리를 찾는 서민들이다. 매매뿐 아니라 전세금도 덩달아 오르니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충남 아산의 한 주민은 “타지인의 갭 투자로 아파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랐다”며 “시세대로 전세금을 맞출 수 없어 다음 계약 땐 이사를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