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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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나온 소형면적 매물이 하나 있었는데요. 최근 집주인이 거둬 들였습니다. 팔면 복비랑 세금 등 비용만 3억원 가까이 물어야한다고 매매 계약 직전에 매도를 포기하더군요.”

2일 서울 구로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8억원짜리 집을 하나 파는데 차익은 4억원 남짓인데 그 중 세금만 2억6000만원 넘게 나온다고 하더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집주인이 1주택자였고 2년 정도 보유했다가 단기간에 집값이 올라서 갈아타기를 시도했는데 결국 포기했다”며 “세금 내고나면 별로 남는게 없다고 하더라. 자산은 집 한채가 다인데 세 부담이 크니 선뜻 팔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1200가구가 넘는 이 단지의 매도 물건은 10개가 채 안된다. 전용 59㎡ 이하 소형 매물은 ‘0’개다.

정부가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을 강화한 데 이어 6월부터 단기 보유 매매 시 세율을 대폭 올리면서 아파트 매물이 급격히 줄고 있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집값이 폭등하면서 갈아타기가 어려워진데다 세금 부담까지 늘면서 집주인들이 매도 시기를 늦추고 있다.

다주택도 1주택도 집 팔면 양도세 '폭탄'

지난해 8월 국회를 통과한 세법 개정안에 따라 지난 6월부터 정부는 조정대상지역 내에 두 채 이상 주택을 가진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重課)세율을 10%포인트 높였다.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자에게 기본 세율에 20%포인트를, 3주택자에게는 30%포인트를 중과했다. 기본세율이 최소 6%(1200만원 이하)에서 최대 45%(10억원 초과)까지 적용되는 만큼 최고세율은 65%에서 75%까지 올랐다.
"8억짜리 집 하나 파는데 세금만 3억…갈아타기 포기합니다"
단기 거래자에 대한 양도세도 크게 올랐다. 1주택자라도 부담이 적지 않다. 1년 미만 보유 주택을 거래할 땐 양도세율이 40%에서 70%까지 치솟았다. 1년 이상~2년 미만 보유 주택의 경우 기존엔 기본세율(최대 45%)이 적용됐지만 현재에는 60%로 부과된다.

올해부터 장기보유특별공제 조건도 달라졌다. 작년까진 연 8%였던 공제율이 ‘보유 기간 연 4%+거주 기간 연 4%’로 바뀌었다. 10년간 아파트를 보유하고, 이 가운데 2년간 실거주를 한 경우를 가정해보면 과거엔 최대 80%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올해에는 48%만 공제를 받는다.

시장에선 양도세 부담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보고 있다. 서울 강동구의 T공인 관계자는 “다주택자들이 집을 정리하려고 해도 세금이 60~70%에 달하는데 누가 집을 팔려고 하겠느냐”며 “최근에도 한 다주택 고객이 노후 준비에 들어가면서 거주할 집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를 매도하려고 했는데 아파트 하나를 파는데도 차익 10억원에 거의 8억원이 넘는 세금을 내야한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포기했다”고 전했다.

"8억짜리 집 하나 파는데 세금만 3억…갈아타기 포기합니다"
실제 2주택자가 15억원에 매수한 서울 아파트를 올해 25억원에 팔면 양도세를 6억4100만원 내야 한다. 여기에 지방세(양도세의 10%)까지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3억원도 안된다. 시세차익의 70% 이상을 세금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만약 같은 집을 3주택자가 판다면 지방세까지 더해 8억원이 넘는 세금을 내야 한다.

1주택자라도 세금은 만만치 않다. 예컨대 3억원에 산 아파트를 8억원에 팔아 5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하더라도 보유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엔 지방세를 포함해 3억8000만원 이상의 양도세가 부과된다. 1년 이상∼2년 미만으로 보유한 경우 세 부담은 3억3000만원가량이다.

집주인들 "일단 버티자"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아파트 매물은 크게 줄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 집계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4만3769건으로 세 달 전(4만8194건)에 비해 10.1% 감소했다.

그나마 나온 매물에는 세금분까지 녹아들면서 값이 폭등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6월 수도권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7억1184만원으로, 처음으로 7억원을 돌파했다. 2018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액이다. 서울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11억4283만원으로 지난해 6월(9억2509만원)과 비교하면 1년 새 2억원 넘게 올랐다.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 /뉴스1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 /뉴스1
매물이 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거나, 양도세 완화나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버티기’에 나서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줄곧 “퇴로(양도세 완화)를 열어줘야 매물이 늘어난다”고 강조해 온 이유다.

내다 팔 수 없으니 결국 다주택자가 주택 정리를 위해 선택하는 길은 증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지난 5월 1261건으로 1월(1026건)보다 23% 늘었다. 서울 아파트 증여는 2월 933건으로 1000건 이하를 기록했지만 3월에는 2019건으로 두 배 이상 치솟았다. 이어서 4월과 5월에도 각각 1528건과 1261건을 기록했다. 특히 강남에서 두드러졌다. 5월 강남3구(강남·송파·서초구) 아파트 증여 건수는 369건으로 서울 아파트 전체 증여의 29%를 차지했다.

서울 상도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정리할 사람들은 과거에 팔았고 최근엔 처분을 고려하는 이들 대다수가 증여를 하지 양도세를 수억원씩 물어가며 매도를 하지는 않는다”며 “과거엔 증여가 강남 부촌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생각했지만 요즘엔 평범한 중산층도 고민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버티기에 들어간 다주택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집주인들이 "양도세 완화안이 나오면 팔자"며 보류시키는 것이다. 올해 초 야당은 양도세 일시 완화 얘기를 내비치고 이어 재·보궐선거를 치르면서는 양도세를 완화할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하지만 선거에서 참패한 뒤엔 ‘정책 후퇴’, ‘부자 감세’라는 비난이 나오자 “부동산 세금 논의는 당분간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최근엔 다시 두 차례의 정책 의총 등을 거쳐 1가구 1주택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현행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상향하는 세제 개편안을 확정지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