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망 직후 어머니가 아버지 명의의 예금통장에서 500만원을 인출해 일부는 장례 비용에 보태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사용한 게 문제가 됐다. 아버지의 재산을 임의로 처분한 것이 되면서 상속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아버지가 남긴 10억원의 빚을 꼼짝없이 모두 떠안는 신세가 됐다.
A씨는 “어머니가 상속재산을 임의로 처분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며 “아버지가 남긴 것을 정리하려는 마음에 계좌에서 돈을 꺼낸 것뿐인데, 억울한 마음이 크다”고 토로했다.
민법(제1026조)에 따르면 상속을 포기하거나 한정승인(피상속인이 물려주는 재산의 한도 안에서만 피상속인의 빚을 청산하는 행위)을 하기 전 고인의 재산을 임의로 처분했을 경우 상속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 후 상속 재산을 고의로 숨기거나 재산 목록에서 누락해도 마찬가지다.
방효석 변호사(법무법인 우일)는 “고인 명의의 부동산이나 자동차 등 고인의 책임재산이 될 수 있는 유류품을 함부로 처분하면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의 제한사유가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장례 비용을 고인의 재산으로 지불하는 경우는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고인의 재산을 임의처분한 것이 아니라 ‘상속비용’을 사용한 것으로 인정돼서다. 방 변호사는 “과도한 비용이 아닌 소액의 합리적인 금액에 한해서 장례비에 고인의 재산을 써야 상속비용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망보험에 가입할 때 피보험자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보험금을 받을 ‘보험수익자’를 지정한다. 통상 보험수익자는 배우자나 자녀 등의 법정 상속인이거나, 이들을 제외한 특정한 상속인으로 지정된다. 이렇게 되면 고인이 사망한 뒤 지급되는 보험금은 고인의 상속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고유한 재산이 된다. 따라서 보험금을 수령해도 상속 포기는 유효하다.
반면 고인이 생전에 가입한 상해·질병보험의 경우 상속을 포기하면 보험금을 수령할 수 없다. 보험가입 시 보험수익인을 자신이 아닌 법정 상속인으로 지정해도 그렇다. 피보험자가 사망 전에도 받을 수 있는 보험금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고인이 사망한 뒤 받을 수 있는 위자료도 지급 대상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예컨대 고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경우, 사고를 낸 가해자가 가입한 보험회사에서 지급하는 위자료도 약관을 따져봐야 한다. 약관에 명시된 지급대상이 고인의 가족이 아니라 사고로 사망한 고인일 경우 상속재산이기 때문에 상속을 포기하면 위자료를 받기 힘들다.
곽종규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변호사는 “통상 고인이 사망한 뒤 가족에게 지급하는 위자료는 상속재산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위자료 지급 대상이 사망한 고인일 경우 상속재산이 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약관을 잘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