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덮죽 · 해운대암소갈비집…맛집 표절 끊이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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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16. 오후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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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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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입맛 믿고 잠자코 있는 수밖에 없나

경북 포항 죽도시장 북쪽 건너편 골목 안엔 의외의 풍경이 있다. 아스팔트 바닥엔 꽃이 그려져 있고 상점 벽면은 각종 조형물과 벽화로 꾸며 있다. 포항시가 구도심 활성화 차원에서 조성한 거리에 회화와 조각, 공예 등 다양한 분야 예술인들이 모여들어 빚어낸 풍경이다. '꿈틀로'라고 이름 지은 이 거리에 최민아 대표가 운영하는 '더 신촌's 덮죽'(덮죽) 식당이 있다.

지난해 최 대표 식당은 두 번 화제가 됐다, SBS 오락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한 번, 사회 분야 뉴스로 다시 한번 세인들 입에 오르내렸다. 골목식당 방송에선 기발한 메뉴를 만들기 위한 최 씨의 노력이 화제였다. 몇 달 뒤 뉴스에선 그런 노력을 훔쳐 가맹 사업을 시도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행각이 문제 됐다. 이른바 덮죽 탈취 소동은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가 사과하며 마무리됐다.

골목식당 방송 이튿날 덮죽 상표출원자, 20건 넘는 상표출원 이력

기자가 만난 최 대표는 탈취 소동을 겪고도 자신에게 달라진 건 없다고 말한다. 백종원 씨를 비롯해 자신을 대신해 싸워주는 사람들이 있어 "말 그대로 열심히 여기서 죽만 만들고 있다"는 거다. 열심히 만든 덮죽을 손님들도 좋아하는지, 여전히 그의 가게는 점심 전 하루 100그릇 분량의 대기표가 동날 정도로 성업 중이다.

하지만 최 대표는 여전히 덮죽에 대한 상표권을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논란을 빚은 프랜차이즈 업체와 별개로, 이 모 씨라는 사람이 나타나 '덮죽'을 상표 출원한 것이다. 골목식당 방송 이튿날 이뤄진 일이었다. 최 대표는 이 씨의 덮죽 상표 출원 시도를 남의 입을 통해 들었다. 한 손님이 이 씨를 거론하며 "그분은 혹시 가족이냐" 물어 비로소 알게 됐다는 것이다.


특허청 특허정보검색서비스를 보면 이 씨는 과거부터 꾸준히 20건 넘는 상표권 출원 시도와 등록을 해온 것으로 나온다. 우유 음료 관련 상표권을 출원했다가 한 차례 거절당한 것을 빼면 이 씨의 출원 분야는 주로 미용기기와 화장품, 건강식품에 집중돼 있다. 명신특허법률사무소 손인호 변리사는 "이 씨가 골목식당 방송 다음날 덮죽 상표권을 출원한 점과, 기존 상표출원 이력이 화장품 등에 편중된 것을 봤을 때 실제 사용 의사는 별로 없는 상태에서 덮죽 상표권을 출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표 선점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SBS 취재 시작 뒤 이 씨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 씨 남편은 자신을 변리사라고 소개하며 "상표법에 관해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골목식당은 본 적도 없기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평소에 자주 다녔지만 지금은 없어진 죽 전문 식당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하고 있는 죽에 쓰기 위해 덮죽이란 이름을 떠올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현재 포항 덮죽 식당 최 대표는 급한 대로 가게 상호와 메뉴를 상표 출원한 상태다. 최 대표에 앞선 이 씨의 덮죽 상표 출원에 대해선 특허청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현행 상표법이 선(先)출원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먼저 등록한 사람이 임자라는 것이다. 자영업자 입장에선 개업할 때 상표권도 같이 출원하는 게 해법이다. 하지만 방법을 잘 모르거나 20만 원 넘는 수수료가 부담스러워 굳이 안 하는 경우가 많다. 특허법률사무소 등 법률 대리인을 통할 수 있지만 비용이 더 늘어난다. '설마 누가 내 가게 이름을 뺏어가겠느냐'는 방심도 맛집 표절을 낳는다.

'원조집' 넘쳐나는 이유…해운대암소갈비집은 어떻게 짝퉁을 물리쳤나

상표법상 내 가게 상호를 아예 상표로 출원 못 하는 경우도 있다. 널리 알려진 지명과 보통명사로만 이뤄진 상호가 그런 경우다. 다 아는 지명과 음식을 내세워 팔면서 내 독점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로 빈대떡과 남산 돈가스, 의정부 부대찌개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 식당 간판에 '원조집'이나 '원조의 원조집' 따위 수식어가 붙는 게 이 때문이다.

부산 해운대구 유명 맛집 해운대암소갈비집도 상표권 보호를 못 받는 경우다. 60년 가까이 한 곳에서만 대를 이어 운영된 식당으로, 코로나 이전엔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꼽혔던 이 집 옥호는 상표 등록이 안 된다. '해운대'라는 지명과 '암소갈비'라는 보통명사에 식별력이 없다는 이유다. 이러다보니 아예 이 가게 이름을 통째로 가져다 쓴 요식업자까지 나타났다. 재작년 3월 서울 용산구에 같은 이름을 한 식당이 등장한 거다. 이 업자는 강남구에 분점까지 냈다.


용산 식당은 식당 이름을 넘어 간판의 서체 등 외관은 물론 음식 차림새까지 모두 비슷했다. 부산 해운대암소갈비집 윤성원 대표는 서울서 찾아오는 단골들의 "서울에 분점을 내셨느냐"는 질문을 듣고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도둑맞은 기분"이었다는 윤 대표는 서울 식당이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했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기각당했다. 해운대암소갈비집이라는 식당 명칭에 딱히 식별력이 없고 이 식당이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다는 이유였다.

윤 대표는 법률대리인을 바꿔 항소했다. "상식적으로 누가 봐도 이름에서부터 글씨체, 기타 나오는 메뉴까지 모두 똑같았는데 잘못이 아니라는 게 이해가 안 됐다"는 거다. 윤 씨 측은 1천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까지 해 해운대암소갈비집을 누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한 끝에 승소할 수 있었다. 항소심서 윤 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광장 김운호 변호사는 "1심 판단이 기존 판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운 사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억울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판결은 최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소송이 답?…진척 없는 정부 '소상공인 상표 도용 실태' 조사

그럼 맛집 표절엔 소송이 답일까? 모든 자영업자가 윤 씨처럼 송사를 벌일 수 있는 건 아니다. 포항 덮죽 최 대표의 경우에도 특허청 판단 이전에 '저 상표는 내 상표를 모방했다'며 무효심판이나 이의신청을 할 수 있지만 소상공인으로서 쉬운 일이 아니다. 정책적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국무조정실이 지난해 덮죽 탈취 파문 뒤 소상공인 보호 차원에서 상표 도용 실태 조사에 나섰지만 아직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일각에선 자영업자 상표 등록에 드는 비용을 정부가 일부 보조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당장 기준과 지원 규모 등에서부터 논란의 소지가 있다. 상표권을 확보하는 주체가 마땅히 짊어질 부담을 공공이 나눠지는 데 대한 합의가 없어서다. 그러는 사이 자영업자들은 내가 가꾼 식당과 메뉴를 표절당하고 자구책으로 소송에 나서는 실정이다. 그래도 분명한 게 있다면 맛집 표절 이유는 명확하다는 거다. 저 집이 잘 되니까, 따라하는 것이다. 결국 시민의 입맛을 믿고 운영하는 수밖에 없는 게 답답하지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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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2 8뉴스] '덮죽' 상표 주인 따로 있다…먼저 등록하면 그만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n/?id=N1006277130 ]

노동규 기자(laborsta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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