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돈 훔쳐도 된다?"…'친족상도례'가 뭐길래(feat.박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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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11. 오후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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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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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방송인 박수홍 인터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1. 회사원 A씨는 집 금고에 뒀던 금괴와 현금 3000만원을 같이 살던 친동생 B씨가 가져갔다는 것을 알게됐다. 도박에 빠진 B씨가 친형인 A씨 돈을 훔치고 집을 나간 뒤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2. 남편 C씨는 이혼 소송을 앞두고 아내 D씨의 현금카드를 몰래 들고 나와 ATM에서 1000만원을 인출했다.

연예인 박수홍씨와 친형 사이의 분쟁에 관한 언론 보도에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는 낯선 법률용어가 등장한다.

형법에는 '친족상도례'라는 단어 자체는 나오지 않지만 관련 조항이 몇개 있다. 권리행사방해죄와 관련된 제328조에 '친족간의 범행과 고소'가 제일 먼저 등장하고, 그 뒤 절도와 강도에 관해 제344조에, 사기와 공갈에 관해 제354조에 , 횡령과 배임에 관해 제361조에, 장물에 관해 제365조에 규정돼 있다.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는 것으로 형법에서 규정하듯 권리행사방해, 절도와 강도, 사기와 공갈, 횡령과 배임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친족사이에 저질러도 처벌을 면제한다는 내용이다. 즉 재산범죄로 통칭되는 이런 범죄를 친족사이에 하더라도 국가가 나서서 형벌로 다스리지는 않겠다는 선언이다.

가족, 친족 사이에서의 '돈 문제'에 국가 형벌권이 개입하지 않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가족·친족 서로 멀어지고 개념도 달라졌는데 친족상도례에도 변화 있어야"




그런데 최근 박수홍 사건을 계기로 친족상도례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와 달리 가족이나 친족의 개념이나 울타리가 달라지고 있으니 형벌권도 굳이 과거처럼 아예 손을 놓고 있을 필요는 없단 주장이다.

물론 박수홍 형제의 경우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박수홍씨 주장대로라 하더라도 친형이 연예기획사를 법인으로 설립해 법인 명의로 돈을 관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수홍씨 주장 그대로 친형이 횡령을 저질렀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경우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단 견해가 다수다. 다만 경우에 따라 개인적으로 박수홍 재산을 빼돌렸다면 그 부분은 친족상도례가 적용될 여지도 있다.

배진석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박수홍씨와 친형은 형제로 가족관계이지만 같이 살고 있지는 않은 '비동거' 가족으로 일단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는 않고 형법 328조 제2항에 따라 직접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에 해당할 수 는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 돈을 훔치더라도 모든 경우에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금이나 금괴 등을 직접 절도한 경우엔 친족상도례가 적용된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족 명의로 된 통장이나 현금카드를 훔쳐 돈을 은행으로부터 인출하는 방식으로 가져갔다면 친족상도례에 해당되지 않는다.



대법원 "통장이나 카드 훔쳐 돈 빼냈다면 친족상도례 적용 안 돼"




대법원은 지난 2007년 할아버지 명의의 통장을 훔쳐 자신의 계좌로 돈을 이체한 손자에 대한 판결에서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거래하는 다른 금융기관으로 자금을 이체했을 경우, 친족 명의의 금융기관은 기존의 예금반환 채무와 함께 금융기관간 환거래에 따른 결제채무를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며 "범행으로 인한 피해자는 이체된 예금 만큼의 채무를 이중으로 지급해야 하는 금융기관이 되는 만큼 친족간 사이의 범행을 전제로 하는 친족간 상도례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돈이 빠져나간 금융기관이, 은행간 결제채무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피해자인만큼 친족 사이의 범행을 전제로 하는 친족상도례를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2심에선 '자금 이체'라는 행위로 발생한 '컴퓨터등사용사기죄'에 따른 피해자는 피고인의 친할아버지이므로 친족상도례를 적용해 이 부분에 대한 형을 면제해야 한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이 틀렸다고 본 것이다.

2013년에도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가 아내의 현금 인출 카드를 몰래 가져가 돈을 빼간 남편의 절도 혐의에 대해 형을 면제한 것은 잘못이라고 보고 파기환송시켰다. 2심이 남편이 아내의 현금 카드를 몰래 가져가 쓴 것은 친족상도례라고 봤지만 대법원은 이 경우에도 남편의 '절도'의 피해자는 아내가 아니라 현금자동인출기 관리자인 은행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훔친 현금카드를 사용해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는 현금자동인출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라며 "현금카드 절도범행의 피해자는 현금자동인출기 관리자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박의준 변호사(법률플랫폼 머니백 대표)는 "과거와 달리 친족간 재산범죄에 대해선 기술의 발달과 함께 친족에 대한 사회문화적 개념도 달라지고 있어서 친족상도례 관련 법률조항에 대해선 입법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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