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재산을 어찌할꼬” 박수홍 트라우마에 빠진 비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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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11. 오전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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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조카 못 준다” 일찍 유언 남기는 싱글족
아직 싱글인 삼촌·이모들의 마음이 요즘 뒤숭숭하다. 방송인 박수홍씨의 조카를 둘러싼 얘기 때문이다. 박수홍씨는 1970년생. 올해 쉰 살이 넘었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재산은 100억원대가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2012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카가 와서 ‘삼촌 유산 내 거예요’라고 하더라.” 결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도중 나온 얘기였다. 이 발언이 최근 다시 회자되고 있는 것은 박씨의 친형과 형수가 박씨의 100억원대 재산을 몰래 챙겼다는 의혹과 맞물리면서다. 일부 싱글족은 이 발언이 ‘역린(逆鱗·군주의 노여움을 비유하는 말)’을 건드린 것이라고 반응한다. 올해 마흔아홉 살인 싱글 남성 김형섭씨는 “남의 돈을 자기 돈으로 생각한다는 얘긴데, 정말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내 재산을 기대하며 내가 빨리 죽기를 기도하는 게 아니냐”는 싱글들의 격앙된 목소리도 올라왔다.

그래픽=김현국

사람은 세상을 떠나면서, 크고 작은 재산을 남긴다. 재산을 힘들게 모았다면 더 애착이 간다. 싱글족들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내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조카에게 물려줘야지’라는 다짐을 하다가도, ‘조카가 마음에 안 드는데 차라리 공익단체에 줘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싱글족(40대 이상 비혼자 수·2015년 기준) 수는 168만여 명에 달한다. 1966년(6791명)에 비해 250배 늘어난 것이다. 통계청은 5년마다 연령대별 비혼 인구를 집계하는데, 올해 9월에 발표되는 2020년 싱글족 수는 3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만약 이들이 평생 싱글로 남는다고 가정하면, 20~30년 뒤 싱글족 재산은 큰 이슈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반영한 듯, 일부 싱글족은 유언을 통해 일찌감치 재산의 향방을 결정짓고 있다.

”사이 나쁜 오빠 아들에겐 유산 안 줘”

전문직 종사자인 50대 김모씨는 최근 40억여원에 달하는 자신의 재산을 한 증권사에 맡겼다. 10억원 상당의 아파트와 주식·펀드 등 금융 자산 30억원 가운데 50% 정도를 자신의 동생과 동생의 아들·딸에게 물려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김씨가 병에 걸릴 경우 생활비와 의료비로 쓰도록 했다. 김씨에게는 친언니도 있다. 그런데 김씨는 “평소 언니보다는 동생과 사이가 좋았기에 동생의 자식들을 선택했다”며 “내가 나중에 병에 걸리거나 치매를 앓을 경우 나와 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서둘러 유언했다”고 말했다.

박수홍씨가 지금처럼 법적으로 비혼으로 남다가 먼 훗날 세상을 떠난다면, 그의 재산은 박씨의 조카들이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민법은 부모·자식이나 배우자가 없는 사람의 유산은 형제·자매가 가져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형제·자매가 이미 세상을 떴다면 그의 자식, 즉 조카가 상속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싱글족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한다. 김재윤 법무법인 명경 변호사는 “상담을 해보면 갈수록 조카와 같은 먼 가족에게 재산이 넘어가는 것을 꺼린다는 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며 “옛날보다 추석이나 설날처럼 가족이 모일 기회가 줄어들고, 가족들과 왕래가 잦지 않다 보니, 조카를 남보다 더 소원하게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재산을 금융회사에 맡기고 금융회사가 자신의 유언에 따라 상속을 집행하는 유언대용신탁에 문을 두드리는 싱글족도 늘어나는 추세다. 법무법인 클라스 여상훈 대표변호사는 “유언으로는 법적으로 유류분(상속 재산 가운데 고인의 뜻과 관계없이 상속 자격이 있는 사람을 위해 반드시 남겨야 할 일부분)이 발생할 수 있어, 평소 싫어하는 조카가 있다고 하더라도 재산이 일부 가게 돼 있지만, 신탁을 하면 유류분이 사실상 발생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신영증권은 지난 2017년에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내놨는데, 처음 1년 동안은 싱글족 가입이 없었지만, 현재는 전체 가입자의 약 10%가 싱글족이 맡긴 재산이라고 한다. 신탁을 하려면 가입비와 운용비, 그리고 사후 집행비 등을 내야 한다. 다만 그 사이 결혼 등 사정이 생겨 해지하거나 계약 내용을 변경할 경우엔 추가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증권사 설명이다.

비혼인 60대 여성 박모씨는 지난 2019년 조카를 상속자에서 완전히 제외하기 위해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맺었다. 박씨에게는 오빠와 동생이 있는데,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오빠, 오빠 자녀와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내 재산은 30억원 정도 되는데, 오빠의 자식은 제외하고 대신 여동생 자식들에게 주기로 하고 유언을 썼다”고 말했다. 벤처회사를 운영하는 40대 싱글 남성 A씨는 25억원에 해당하는 재산과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주식 전부를 증권사에 맡겼다. 부모와 동생은 특별한 수입이 없어 A씨가 사실상 먹여 살리고 있다. 자신이 사망할 경우 50%는 동생에게 물려주도록 유언했는데, 단서를 달았다. 동생이 50세가 될 때까지는 월 400만원까지만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A씨는 “동생이 재산 관리 능력이 부족한데도 재산 욕심이 많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내린 조치”라고 했다.

싱글족 유산, 사회문제 될 수도

재산을 아예 공익재단에 넘기겠다고 나선 싱글족도 있다. 40대 비혼 남성 김모씨는 10억원(아파트 5억원·펀드 5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공익재단인 ‘유니세프’에 기부하기로 하고, 증권사에 맡겼다. 단 자신이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에는 어머니가 재산을 물려받도록 했고,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어머니가 쓰고 남은 재산을 유니세프에 기부하도록 유언을 썼다. 그는 “남동생 한 명과 그의 자식들이 있는데, 남동생은 어머니를 돌보지도 않고 오히려 어머니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며 “남동생 가족에게 줄 바에야 차라리 검증된 기관에 기부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 50대 비혼 남성은 지난해 사망했는데, 생전 형제나 자매가 아닌 교회에 5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기부하기로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외국에선 반려견과 같은 애완동물에게 거액의 재산을 물려주는 경우도 있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 사는 사업가 빌 도리스씨는 작년 11월,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8세 보더콜리 반려견에게 500만달러(약 56억원)를 물려줬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그는 싱글족이었는데 생전에 자신이 사망할 경우 반려견의 새 주인으로 이웃에 사는 88세 마사 버튼이라는 할머니를 지정했고, 500만달러를 반려견 양육에만 써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이 할머니는 재산 관리인에게 사후 영수증을 제출해 승인을 받는 형태로 반려견 룰루의 양육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김재윤 법무법인 명경 변호사는 “민법상 상속 권리는 법인이나 사람에게만 있고, 반려동물은 물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직접 유산을 받을 수는 없다”며 “다만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자신의 유산을 특정 반려동물을 위해 써달라고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싱글족의 재산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영증권 오영표 패밀리헤리티지 본부장은 “점점 가족 간 교류가 줄어드는데, 많은 싱글족이 세상을 뜨는 시기가 오면 재산과 관련된 각종 논란이나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싱글족이라면 일찍이 자신의 재산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곽창렬 기자 lions363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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