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고수’에게 맡겼던 비트코인 12억 ‘대폭락’…법정 판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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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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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을 소개합니다.

요즘 비트코인 가격이 4000만 원을 넘나든다고 합니다. 주식시장과 달리 암호화폐 거래소에선 가격제한폭 없이 급등락이 가능한데요, 이런 암호화폐의 변동성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점인 동시에 투자를 꺼리게 되는 요인이기도 하죠.

오늘은 고수익을 노리고 자신이 가진 암호화폐의 투자를 타인에게 일임했다 코인 가격이 급락해 법정 싸움을 벌이게 된 최신 사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원금(비트코인) 반환 의무가 있는지, 계약기간이 정해진 투자였는지가 쟁점이었습니다.

■전업 투자자에게 연 24% 수익 목표로 비트코인 30개 건네

앞서 A 씨는 2018년 6월 전업 투자자 B 씨와 '비트코인 30개'를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현재 시세로는 12억 원 어치에 이르는데, 주된 내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A 씨는 위와 같은 '투자계약' 내용에 따라 2018년 6월 B 씨에게 비트코인 30개를 보냈습니다. B 씨는 이 비트코인을 비트맥스, 바이낸스, 비트파이넥스, 업비트 둥 가상화폐 거래소의 전자지갑으로 보내 매도와 매수를 반복하며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 비트코인 '마진 거래' 끝에 증발한 코인…"돌려달라" 법정으로

B 씨는 2018년 10월 비트맥스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매매하면서, 비트코인 대금의 일정비율에 해당하는 증거금을 입금하고 마진 비율을 설정해 본래 투자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운용할 수 있는 이른바 '마진 거래'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마진 거래는 일반 거래에 비해 시세변동에 따른 수익과 손실의 폭이 커, 시장 예측을 잘못하면 자산이 강제 처분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B 씨가 가진 비트코인 개수는 비트맥스 거래소에 26.23개, 업비트 거래소에 0.82개였습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2018년 11월 대폭락 사태를 겪었습니다. 2017년 12월 1만 7000달러까지 올라갔던 비트코인 가격은 2018년 12월 3300달러 대로 추락했습니다.

마진 거래에 의한 손실처리에 따라 B 씨가 가진 비트코인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2018년 12월 말 B 씨는 전자지갑에 들어있던 비트코인을 모두 잃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투자자 A 씨는 2019년 B 씨를 상대로 "비트코인 30개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A 씨는 "이 사건 투자계약은 2018년 9월 혹은 10월 계약기간이 만료돼 종료됐고, 설령 이 사건 투자계약이 연장됐다 하더라도 원고는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에 의해 이 사건 투자계약 해지 의사표시를 했으므로 투자계약은 종료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B 씨는 투자한 비트코인의 원금을 보장했을 뿐 아니라 피고가 교부받은 비트코인 자체는 시세변동과 관계없이 그대로 보관되는 것이므로, 피고는 이 사건 투자계약 종료에 따라 원고에게 비트코인 30개를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A 씨는 이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손해배상 청구 역시 함께 냈습니다.

A 씨는 "B 씨가 이 사건 투자계약에 따라 원고의 비트코인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서 운용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 사건 투자계약이 종료되었음에도 원고로부터 교부받은 비트코인으로 고위험의 마진 거래를 하다 비트코인을 모두 소진한 것이므로, 선관주의 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비트코인 30개의 가액 2억 727만원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법원 "연 24% 수익률에 원금 보장은 불합리…투자자에게 위험도 귀속"

하지만 1심 법원은 A 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쟁점원금 보장 약정이 있었는지, 또 정해진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반환 의무가 생기는지 여부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제30민사부(부장판사 고종영)는 우선 A 씨의 주된 주장과 관련, A 씨와 B 씨 사이에 '원금보장' 약정은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투자계약은 △원고가 피고에게 비트코인 30개를 '투자'한다고 정할 뿐 명시적으로 원금을 보장한다고 정하고 있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는 점 △원고가 투자한 비트코인 30개는 비트코인 자체를 매도·매수하는 형태로 운용됐고 투자계약서에도 그러한 운용 방식을 의도했던 것으로 보이므로 비트코인 매매로 인한 수익 또는 손실은 원고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투자계약에 따르면 목표수익률이 통상적인 수익률보다 훨씬 높은 연 24%임에도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원금이 보장된다고 보는 것은 불합리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금보장약정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비트코인 30개가 그 비트코인 자체를 매도하거나 매수하는 형태로 운용되는 이상 비트코인이 시세변동과 관계없이 그대로 보관되어야 한다는 A 씨의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또 투자계약이 2018년 9월 또는 10월에 종료됐다는 A 씨의 주장도 배척했습니다.

A 씨와 B 씨가 애당초 '계속적 투자'를 예정한 것으로 보고, 투자계약이 당사자들의 다른 의사표시가 없는 이상 3개월을 주기로 자동 연장됐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투자계약 제5조는 '첫 투자 계약기간', '베타 투자기간'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계속적인 투자를 예정하고 있는 점, 목표 수익률에 관한 합의가 없을 경우 베타 수익률로 자동 연장된다고 정하고 있어 계약의 자동 연장을 전제로 하고 있는 점, 제6조가 수익의 배당을 3개월 주기로 한다고 정하고 있어 최초 계약기간 후 주기적 배당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점, 소송을 제기하기 전까지 원고가 투자계약의 종료를 주장했다거나 정산을 요구했단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어 법원은 B 씨가 관리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점을 전제로 한 A 씨의 손해배상청구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폭락을 예상치 못한 건 과실로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투자계약이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종료됐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후 피고가 원고의 비트코인을 계속 운용한 것 자체에 잘못이 있다고 볼 수 없고, 2018년 11월부터 발생한 비트코인 대폭락 사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예측하기 어려웠던 급격한 폭락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바 피고가 이를 예측하지 못한 데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법원은 "투자계약이 목표 수익률을 연 24%로 정하고 있어 그런 고수익에 따르는 고위험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이므로, 피고가 그러한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진거래를 한 것이 투자계약의 본지에서 벗어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 14일 2심 서울고등법원에서도 A 씨의 항소가 기각됐습니다.

항소기간이 지나지 않아, 상고심에 올라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백인성 (isbae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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