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 보유한 주주가 모든 주주 정보 내놔라…상법 개정 시급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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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A사는 최근 주주총회를 앞두고 한 주주로부터 회사 전체 주주명단을 요청받았다. 주식 1주를 가진 이 주주는 주주명부 요청 목적도 밝히지 않았다. 회사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현행법 때문에 주주명부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기업들이 일부 주주의 무리한 주주명단 요청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주명부를 요청하는 경우는 경영권 분쟁이 있거나 소송 등을 준비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목적이 불분명한 경우가 늘고 있다.

A사처럼 개인 주주가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 특정 기업이나 투자사가 여러 상장사 지분을 취득한 뒤 동시다발적으로 요청하는 경우 등이다. 지난 2020년에는 한 금융교육업체가 주총 시즌도 아닌데도 상장사 10여곳에 주주명부를 요청해 논란이 일었다. 해당 교육업체는 불과 10~100주만 보유했으며, 주가가 하락했다는 이유를 들어 명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상법 396조에 규정된 주주명부열람권 때문이다. 주주는 회사의 주주명부 열람과 등사를 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문제는 단 1주를 가진 주주에게 모든 주주의 이름과 주소, 보유 주식 수 등 개인정보가 담긴 명부를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주명부 열람 목적이 불분명해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사 대표는 “단 1주를 보유한 주주에게 주주명부를 요청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어 이유를 물었지만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면서 “수차례 법률 자문을 거쳤지만 상법과 판례 등으로 주주명부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상법 396조에 주주의 주주명부 열람신청이 정당하지 못한 경우 명부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하지만 주주가 열람 목적을 밝히지 않을 경우 회사가 목적이 정당하지 않음을 입증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해외와 비교해도 우리나라 상법이 과도하게 주주 권리를 인정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목적이 적절한 때만 주주명부 열람권을 보장하며, 정보 제공에 동의한 주주만 열람할 수 있다. 일본은 거절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서 기업이 대응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문제가 알려지면서 상법의 주주명부열람권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소한 미국이나 일본처럼 주주명부를 요청하는 경우 어떤 목적으로 요청하는지 분명히 밝히고, 목적에 위배되는 경우 사용이나 요청을 제한하도록 하는 보완 규정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조건적인 명부 열람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도 상충한다.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정보가 제공되고, 특히 최근 주주명부를 요청하는 경우는 명부를 파일로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유통과 재확산이 우려된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는 “개인정보보호법 일반법이 2011년에 제정됐는데 그 이전에 제정된 법들은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개인정보보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개인정보보호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상법 조항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법 개정과 별개로 개인정보 최소 수집 원칙에 따라 주소 등의 정보는 마스킹(가리기)으로 처리해서 제공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