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썩은 배추·곰팡이 무로 만든 '명인 김치'‥처벌 못 하나?

입력
수정2022.03.05. 오전 9:38
기사원문
이문현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 김치 명인이 이렇게 김치를 만든다고?

1월 중순,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 김순자 씨가 운영하는 한성식품 자회사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못 먹을 수준'의 배추와 무로 김치를 만들어 판매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영상 2개도 첨부돼 있었는데, 곳곳에 곰팡이가 핀 공장과 상태가 안 좋은 '무'를 손질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런 무로 깍두기를?' 믿기지 않았습니다. 대형마트와 시장에서 파는 무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비위생적인 공장 상태도 경악스러웠습니다.

바로 공익신고자에게 연락해 더 많은 자료들을 확보했습니다. 거무튀튀하거나 갈색으로 색이 변한 배추, 보라색 곰팡이가 피거나 짓무른 무를 다듬는 영상 등이 20개가 넘었습니다. 22분 30초 분량입니다.

공익신고자는 해당 업체가 이런 배추와 무로 김치를 만들어 '한성식품' 브랜드를 달고 특급호텔과 대기업 급식업체,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납품할뿐만 아니라, 해외 수출까지 한다고 했습니다.

■ "쉰내 난다고 했더니, 쉰내나는 건 괜찮다"?

공익신고자가 제보한 영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2년 1월 12일)
작업자가 거무튀튀한 배춧잎을 떼어내는데, 겉잎을 벗기고 또 벗겨내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배추 색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한 차례 겉잎을 떼어내는 작업을 마무리한 배추를 쌓아뒀는데, 대부분 뿌리부터 변색돼 있습니다.

(21년 10월 8일)
포기김치용 배추를 절여 놓았는데, 배추 색이 얼룩덜룩 합니다. 김치공장 아주머니가 그중 특히나 변색이 심한 배추를 골라내는 작업을 하면서 다른 직원에게 이런 말도 합니다.

"쉰내 난다고 했더니, 쉰내나는 건 괜찮대‥그런데 뭐라고해 내가"



영상 속 무의 상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치공장 아주머니들이 속까지 갈색으로 변한 무 절반을 잘라내거나, 물러진 부분을 도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이들이 잘라낸 무의 단면을 보니 보라색 반점이 가득했습니다.


공익신고자는 배추와 무가 입고된 날 작성한 '원자재 검수보고서'도 보여줬는데, 보고서엔 "배추 겉잎과 내부잎이 썩고 멍들어 수출용 부적합", "내부가 썩어 폐기율이 높다", "썩고 악취가 난다" 등의 표현이 곳곳에 적혀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9일 작성된 보고서엔 "입고된 개체중 80% 이상 내부가 썩어 갈변됨"이라며 "평균 수율 52%"라고 돼 있습니다. 수율, 즉 사용할 수 있는 배추가 52%라는 의미입니다. 배추 한 통 중 절반 가까이를 버려야하는 겁니다.


이 보고서는 배추 품질을 관리하는 직원이 공장장과 본사인 한성식품 임원진들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내부 문건입니다.

MBC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배추가 입고된 날 작성된 18일치의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썩다' 라는 표현이 14일, '수출 부적합'이란 표현이 6일에 걸쳐 나타났습니다. 하루 이틀만의 문제가 아닌 겁니다.

■ 공장장 "악의적 제보"라더니‥취재진이 따져 묻자 말이 바뀌어

취재진은 회사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충북 진천에 위치한 한성식품 자회사 공장을 방문해 공장장을 만났습니다.

우선 공장장에게 제보 받은 영상들을 보여줬더니, '악의적 제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제보자가 배추의 상태가 좋지 않은 날만 골라서 영상을 찍었다는 주장입니다. 21년 10월 8일 찍은 색이 변한 절인배추에 대해서도 '거진 버렸다'고 답변했습니다. 처음부터 버리지 않고 배추를 굳이 소금에 절인 뒤 버렸다는 건데, 납득이 안 됐습니다. 8개월 분량의 원자재 검수보고서를 보여주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불가식 부분을 모두 제거한 후 사용한다'고 말이 바뀌었습니다.

불가식 부분, 즉 먹을 수 없는 썩고 짓무른 부분을 모두 버리고 남은 배추로만 김치를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배추가 좋지 않은 날에는 수율이 50% 정도 나오는데, 썩은 부분을 100% 걸러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수율 50%'. '썩은 부분 100% 제거 가능'

언뜻 들으면, 문제 없는 반박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장장의 주장처럼 '수율 50%', 즉 절반이 썩은 배추를 사와서 썩은 부위를 100% 도려내고 남은 부분으로만 김치를 만들면 정말 문제가 없는 걸까요? 저는 우선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뒤 한성식품 본사 임원진을 만났습니다. 자회사에 들어가는 배추는 모두 한성식품 본사에서 공급하기 때문에, 왜 이런 배추를 줬는지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공장장과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썩은 배추를 완전히 도려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이번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 안전 기준서인 '식품공전'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식품공전'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제2의 2) 원료는 품질과 선도가 양호하고 부패·변질되었거나, 유해물질 등에 오염되지 아니한 것으로 안전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제2의 3)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때에는 흙, 모래, 티끌 등과 같은 이물을 충분히 제거하고, 비가식부분은 충분히 제거하여야 한다.


그러니까, (제2의 3)항목에 따라, 비가식부분(먹지 못할 부분)을 충분히 제거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고객사에 이런 배추를 사용한다고 털어놓고 공급 계약을 체결할 수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제서야 한성식품 본사 측은 "배추 관리가 부족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배추는 폐기하고 쓰지않겠다"고 답변했습니다.

결국, MBC는 지난 2월 22일 첫 보도를 냈고, 보도 당일 한성식품은 "소비자들에게 사과한다"며 문제가 된 자회사 공장을 폐쇄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음날엔 다른 본사 공장 3곳도 문을 닫고 재정비하겠다고 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MBC 보도 후, 즉각 조사에 착수했고 엿새 뒤 한성식품 김순자 대표의 '김치명인 1호(식품명인 29호)'에 대한 자격 취소를 결정했습니다.

또 이번 사건처럼 식품명인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품위를 손상한 경우 식품명인 지정을 취소할 수 있도록 '식품산업진흥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썩은 배추·곰팡이 무' 김치‥과태료 50만 원?

MBC는 앞서 공익신고자가 8개월 동안 모은 내부 영상과 보고서 등을 모두 식약처에 제출했습니다.

영상과 보고서를 본 식약처 또한, 해당 배추와 무가 원료로 사용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식약처는 이 자료를 근거로, MBC의 첫 보도가 나간 지난 22일 문제의 충북 진천 공장에 조사원 4명을 보내 9시간 동안 조사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2월 초부터 취재중이었기 때문에, 현장은 모두 치워진 상태였습니다.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식약처에 물었더니 현재로선 "과태료 50 만원"이 전부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해당 배추를 사용했다는 현장 적발을 하지 못 했기 때문에 행정처분도, 형사고발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할 수 있는 조치가 '식기와 용기 위생불량'에 따른 '과태료 50만 원' 처분이 전부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내용도 <2월 24일>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밤 늦게 식약처는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제보자가 제출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지속적인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행정조사가 어려운 경우 수사를 통한 추가 조사도 논의 중"

■ "이럴 거 같으면 그 사람들이 뭘 무서워하겠어요?"

식약처의 '과태료 50만 원' 발언에 대해 공익신고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익신고자]
"국민적인 분노가 있고, 공감대가 있는데‥조금 벌금 맞고 지나가 버리고, 이름만 살짝 바꿔서 다시 시작하고. 이럴거 같으면 그 사람들이 뭘 무서워하겠어요."


공익신고자가 모은 8개월치의 증거자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약 식약처가 당초 입장대로 어떤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른 식품업체들은 원재료에 소홀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게 식품업계에서 오랜시간 종사한 공익신고자의 생각입니다.

'처벌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관리할 이유도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공은 모두 식약처로 넘어갔습니다. 식약처 판단을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