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만 입고 등산 오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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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30. 오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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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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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레깅스 전성시대다. 신축성이 뛰어난 것은 물론 허벅지와 엉덩이를 탄탄하게 잡아줘 몸매를 돋보이게 해주는 제품이 봇물 터지듯 출시되고 있다. 레깅스는 활동성이 뛰어나 하이킹이나 걷기, 가벼운 나들이 등에 착용하기 좋다. 또한 터치감이 부드러운 소재를 적용해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해 최근에는 등산복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애슬레저룩 시장은 2009년 5000억 원에서 2020년 3조 원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정도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다양한 레깅스 패션의 등산객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20~30대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는 청계산에서는 여성 등산객의 90%는 레깅스를 착용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레깅스만 입고 등산하는 레깅스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입는 사람은 편할지 몰라도 보는 이들이 불편하니 자제해 주길 바란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여름 '제발 레깅스만 입고 등산하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당시 20만 회 가까이 조회가 된 이 글 작성자는 "등산하러 갈 때마다 엉덩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다니는 여성분들 한둘이 아니다. 솔직히 본인도 민망하지 않나"라며 "긴 티셔츠로 엉덩이를 가리는 거면 몰라도 상의까지 짧게 입으면 뒤에 따라오는 사람한테는 고통이다"라고 힐난했다. 이어 "특히 살구색 레깅스에는 도저히 할 말이 없다"며 "제발 남의 시선도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글을 두고 네티즌들은 "입고 싶으면 어두운색 입어라. 여자가 봐도 와이존은 민망하다"는 의견과 "미니스커트 입지 말라고 70~80년대에 지팡이 휘두르던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나. 왜 남의 패션을 자신들 기준으로 평가하나" 등의 의견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였다.

하지만 당분간 레깅스 '갬성(감성의 변형된 말로 SNS에서 유행하는 것을 표현함)''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를 반영하듯 여성들이 선망하는 몸매의 보유자들은 보란 듯 SNS에 레깅스 몸매를 뽐낸다.

사진=조현 인스타그램

28일 그룹 베리굿 멤버 조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름 등산에는 특히 탈수증상을 막아야 하니까 등산 가방에 물병을 넣고 다니면서 자주 마시는 게 좋다"는 말과 함께 레깅스 차림으로 등산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명품 몸매의 주인공답게 등산 룩을 완벽하게 소화해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NC 다이노스 소속 프로야구 선수 강동연의 누나 강소연도 레깅스 차림으로 등산을 한 모습이 화제가 됐다.

강소연은 최근 자신의 SNS 인스타그램에 “불암산 클린하이킹. 아무도 없었던 평일 오전 등산”이라면서 오렌지색 레깅스와 탑만을 착용하고 자신만만하게 몸매를 드러냈다.

변호사 겸 방송인 서동주의 레깅스 패션도 눈길을 끈다.

사진=서동주 인스타그램

서동주는 보디라인이 드러나는 운동복 차림으로 산행을 즐기는 사진과 함께 "청계산 가서 막걸리 먹고 왔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각종 카페에서도 레깅스 패션에 대한 찬반양론이 여전히 뜨겁다.

한 지역 카페에는 "등산 갔는데 레깅스에 짧은 티셔츠 입고 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권리는 있겠지만 흉한 거 보고 싶지 않은 내 자유도 보장해 달라", "다른 건 다 좋은데 긴 티 입고 와이존은 좀 가리자. 반대로 남자들이 그런 레깅스 입고 짧은 티 입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보라"고 역지사지를 권유하는 글도 있었다.

반면 "레깅스 입고 등산 온 친구가 솔직히 부러웠다. 몸매만 좋다면 나도 입고 싶다"는 옹호론도 제기됐다.

일부 네티즌들은 "등산 하다 보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앞 사람의 레깅스 때문에 시선 처리가 불편하다. 핑크색이나 흰색 등은 피해달라"고 당부했다.

레깅스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법적 공방으로 번진 사례도 있다.

2018년 5월 한 남성이 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약 8초간 몰래 촬영하다 적발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으로 기소됐다.

1심은 촬영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남성이 성적 욕망에 이끌려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 또한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현장에서 피고인에게 항의한 점 등을 고려해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것이다.

하지만 2심은 이를 파기하고 무죄를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로 직접 노출되는 피해자의 신체부위가 목과 손, 발목 부분이 전부이고 A씨가 촬영시 하체를 확대하거나 부각시켜 촬영하지 않았다는 점을 무죄판결의 근거로 삼았다.

또 "피해자가 당시 입고 있던 레깅스는 피해자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 사이에서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고, 피해자 역시 위와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다"며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판결에 대해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된다거나, 피해자가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사정은 레깅스를 입은 피해자의 모습이 타인의 성적 욕망이 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몰카범죄의 대상이 되는 신체는 반드시 노출된 부분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옷이 밀착돼 굴곡이 드러나는 경우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레깅스를 입은 하체는 성적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하며, 피의자가 성적욕망 충족을 위해 촬영을 했고, 피해자의 진술은 성적 수치심이 유발됐다는 의미로 충분히 이해된다면서 항소심의 무죄판결 근거를 모두 파기하고 유죄취지로 돌려보냈다.

이처럼 엇갈린 재판부의 판단은 일상에서 레깅스를 입는 여성에 대한 시선 또한 얼마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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