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갈등 어쩌나... 위층 층간소음에, 아래층 모기향 냄새로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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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11. 오전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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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사적 보복 했다가, 윗집 청각 손상되면 폭행죄 될 수도”
일러스트=김도원

경북 포항에 사는 신모(31)씨는 최근 윗집의 층간 소음에 잠을 통 못 이루고 있다. 밤 11시 넘어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개까지 짖어대기 때문이다. 윗집을 찾아가 항의도 해봤지만 “살면서 나는 소리를 어떡하느냐”는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신씨는 ‘복수’에 나서기로 했다. 책상 위에 선반과 책 여러 권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설치해 천장과 밀착시킨 것이다. 신씨는 “매일 밤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유튜브로 ‘개 짖는 소리’ ‘쿵쿵 발 디디는 소리’ 같은 생활 소음 영상을 최대 음량으로 튼다”고 했다. 위층을 향해 ‘복수 소음’을 쏜 것이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한모(30)씨도 “윗집의 층간 소음에 복수하기 위해 작년 11월부터 거실 에어컨 위에 스피커를 올려놓고 ‘망치 소리’ 등 다양한 생활 소음을 매일 바꿔가며 트는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며 층간 소음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에 지난해 접수된 층간 소음 민원은 4만2250건으로 2019년 대비 60.9% 늘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층간 소음과 관련해 ‘처벌법을 만들거나 과태료를 부과해달라’ ‘방지 교육을 시켜달라’ 등 400여건의 청원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문제는 층간 소음 분쟁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적(私的) 보복에 나서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10일 유튜브에 ‘층간 소음 복수 음악’을 검색하자 ‘발소리 360분’ ‘통돌이 세탁기 3시간’ ‘드럼 소리 8시간’ ‘욕실 바가지 던지는 소리’ 등 300여건의 생활 소음 영상이 나타났다. 각 영상에는 “스피커를 화장실에 설치해 소음을 틀고 있다” “의자 끄는 소리도 만들어달라” “하루종일 틀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달라” 등의 댓글이 달려 있다.

‘보복용 도구’도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 ‘층간 소음 스피커’로 검색하면 ‘보복’ ‘복수’ 같은 설명이 붙은 제품 2000여건이 검색될 정도다. 이 제품들은 ‘골전도(骨傳導) 방식이라 소리가 벽을 잘 뚫는다’ ‘윗집 소음은 키우고 사용자 소음은 최소화했다’ 등의 문구로 광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냄새 보복’까지 등장했다. 화장실 환풍기 등을 통해 담배나 모기향, 소독약 같은 독한 냄새를 윗집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부산 연제구에 사는 이모(34)씨는 작년 11월부터 층간 소음에 시달리다 ‘냄새 반격’에 나섰다. 경찰에 신고도 해 보고, 정부에 민원도 접수해봤지만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달부터 화장실 환풍기 밑에 불붙인 담배를 꽂은 페트병을 두는 식으로 윗집으로 담배 연기를 내보냈고, 최근엔 우리 집에도 냄새가 퍼지는 것 같아 모기향으로 바꿨다”며 “문제 해결은 이제 포기했고 이런 식으로 복수라도 하겠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사적 보복에 나서는 이들은 “공권력 개입이나 제도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며 “층간 소음은 당해보지 않으면 그 아픔을 모른다”고 말한다. 2014년 ‘공동주택 층간 소음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이 소음의 범위·기준을 정했지만 이를 위반했을 때 강제 처벌 조항은 없다. 한국환경공단 산하 ‘층간 소음 이웃사이센터’가 현장에서 직접 소음을 측정 후 이웃 간 갈등을 중재하고 있지만, 실제 센터가 민원을 접수받고 현장 진단에 나서기까지는 6개월 넘게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소장은 “센터에 층간 소음 민원을 접수하면 1차 상담까지만 2~3개월이 걸리고, 이때 해결이 안 되면 다시 센터 측에서 현장 진단에 나서기까지 2~3개월이 더 걸린다”며 “막상 센터 직원이 현장을 방문해도 윗집 거주자가 부재중이면 만나지 못하고 현장을 뜨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를 봤다고 섣불리 사적 보복에 나섰다간 거꾸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법무법인 선린의 주명호 변호사는 “위층에서 아래층으로의 일반 층간 소음과 달리 아래층에서 보복성으로 유발하는 소음은 고의성이 입증될 가능성이 크다”며 “위층 거주자의 청각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폭행죄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런 식의 보복은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김동현 기자 bo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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