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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공직생활 후회됩니다"…女공무원 무너뜨린 '악몽의 10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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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만 생각하면 잠도 안 오고, 30년 공직 생활이 후회됩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최근 민원인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한 공무원 A씨(50대 중반 여성)가 1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A씨는 “두 달 전 일인데 1분 1초의 모습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아직 가족은 (이 일을) 모른다. 주변 동료의 응원 덕분에 힘을 내서 다시 출근했다”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조 부여군지부 정하승 지부장이 공무원을 상대로 폭행과 폭언을 일삼은 민원인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있다. [사진 부여군]

전국공무원노조 부여군지부 정하승 지부장이 공무원을 상대로 폭행과 폭언을 일삼은 민원인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있다. [사진 부여군]

A씨의 사연은 이렇다. 지난달 11일 오전 충남 부여군의 한 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에 B씨(40대 남성) 등 민원인 2명이 찾아왔다. 문묘 개장 신고를 위해 찾아온 이들은 관련 서류를 갖추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부족한 서류를 보완하고 내용이 틀린 신청서를 다시 작성하도록 안내했다. A씨가 발급을 요청한 민원은 현장 확인과정과 결재를 거치기 때문에 서류를 갖췄더라도 2~3일 정도는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B씨 등은 “(다른 곳에서는) 바로 발급이 가능한데 왜 안 해주느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민원인 2명 "서류발급 안해준다" 고성·항의 

목소리를 높이던 B씨는 일행과 함께 A씨를 향해 욕설을 퍼부은 뒤 주먹으로 A씨를 때렸다. 책상을 치며 고성으로 윽박지르기도 했다. 10여 분간 이어진 B씨 일행의 행동은 행정복지센터 내 폐쇄회로TV(CCTV)에 모두 녹화됐다. 난동을 부리던 B씨 일행은 행정복지센터 센터장(면장)의 만류에 겨우 진정하고 돌아갔다.

지난 2월 충남 부여군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폭행과 폭언을 행사한 사건이 발생하자 공무원노조가 법원에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사진은 부여군 민원실 모습. [사진 부여군]

지난 2월 충남 부여군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폭행과 폭언을 행사한 사건이 발생하자 공무원노조가 법원에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사진은 부여군 민원실 모습. [사진 부여군]

A씨는 “폭행을 당하는 순간 32년간의 공직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며 “공직을 시작한 지 1~2년에 불과한 새내기들이 느꼈을 공포감과 직업에 대한 회의가 어떠했을지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폭행 이후 경찰은 A씨의 신고를 받고 행정복지센터에 출동했다. 당시 B씨 일행은 떠나고 없었으나 CCTV 영상을 확보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동료 공무원들의 진술도 들었다. A씨는 경찰에 엄중한 처벌을 요청했다.

검찰 '약식기소'→법원 '정식 재판' 진행

사건을 접수한 부여경찰서는 지난달 B씨 등 2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법원에 약식명령을 청구하고 B씨 등 2명에 벌금 500만 원을 부과했다. 약식명령은 검찰이 공판(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서면 심리만으로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절차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약식명령으로 사건을 종료하는 게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직권으로 공판 절차에 회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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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B씨 등에 대해 약식명령을 청구했다는 통보를 받은 A씨는 지난달 말 대전지법 논산지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전국공무원노조 부여군지부도 논산지원에 “폭행사건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달라”며 공무원 650여 명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제출했다. 충남지역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600여 명도 법원에 탄원서를 내고 엄중한 처벌을 요청했다.

지난 2020년 5월 부산시청 민원실에서 민원실 공무원에 대해 가상의 폭행과 난동을 부리는 상황을 연출한 훈련이 이뤄지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2020년 5월 부산시청 민원실에서 민원실 공무원에 대해 가상의 폭행과 난동을 부리는 상황을 연출한 훈련이 이뤄지고 있다. 송봉근 기자

A씨와 공무원노조 등의 탄원서를 접수한 대전지법 논산지원은 B씨 등 2명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공무원노조 "일벌백계로 처벌해달라" 호소 

공무원노조 부여군지부 정하승 지부장은 “공무원에 대한 폭언과 폭행은 행정 최일선에서 일하는 대다수 공무원이 겪고 있는 현실로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언어폭력을 넘어 폭행까지 발행한 만큼 일벌백계로 엄벌에 처해줄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충남 홍성군이 민원 공무원에 대한 폭언·폭행사건이 증가함에 따라 안전한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민원 응대부서 공무원에게 목걸이형 카메라인 '웨어러블 캠'을 보급했다. [사진 홍성군]

충남 홍성군이 민원 공무원에 대한 폭언·폭행사건이 증가함에 따라 안전한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민원 응대부서 공무원에게 목걸이형 카메라인 '웨어러블 캠'을 보급했다. [사진 홍성군]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민원인의 위법행위(폭언·욕설 및 폭행, 성희롱 등)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8년 3만484건이던 위법행위는 2019년 3만554건, 2020년에는 4만6079건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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