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모르게 당한다"…중간착취의 사슬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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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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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중간착취는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픽사베이


노동자들 "임금 착취에서부터 간식비까지, 중간착취는 빈번한 일"

"이건 뭐...관례? 악습이에요. 오래 전부터 자행되던 일이라 지금와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잘 없습니다.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쁘다고 소리치지는 못하는 현실입니다"

경남의 한 건설업계에서 관리직을 맡고 있는 김씨(32.밀양)는 건설현장에서 공공연히 일어나는 중간착취 행위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쓴웃음을 삼켰다.

중간착취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개입해 노동자가 받아야할 임금의 일부를 떼어 중간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근로기준법 제9조와 직업안정법에서는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중간착취를 금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실은, 노동자가 원청에서 일을 해도 계약은 그 밑, 하청업체와 체결하기때문에 노동의 대가 중 90%를 착취당해도 불법이 아니다.

이와같은 중간착취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김씨는 "중간착취를 일명 '똥떼기'라고 칭한다. 대형건설기업에서는 그나마 조심하는 편이지만, 중견기업이나 사기업 등에서 중간착취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며 "특히 원청에서 내려온 일감을 나누며 이중용역이 발생하면 더욱 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또 건설 쪽에서 작은 사기업을 운영하는 운영자 A(59.김해)씨는 "보통 용역이라 칭하는 하청업계는 일감이 일정치 않다. 그때 그때 일하는 노동자의 수도 달라, 사무실 운영비, 관리비 조로 임금의 10%를 떼간다"며 "이는 20년도 더 된 오래된 관습이다. 이러한 관습을 바꾸기는 힘든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파견.용역업체 측은 파견 원가나 도급비에서 부대비용을 뗄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부대비용으로는 세금, 퇴직금, 피복장구비, 영업배상료 등 종류도 다양하다.

뿐만아니라,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비용을 갈취하기도 한다.

경남의 한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약 3년간 일했던 주부 B(58.김해)씨는 "공장에서 일할 때, 상부에서 간식비용과 문구류 등 부수적인 비용을 노동자들의 주머니에서 각출해 내도록 지시한 적이 있다"며 "물론 소액이라 이를 의심없이 따르는 노동자가 대부분이었지만 당시 이러한 비용까지 낼 필요는 없다며 저항한 바 있다"고 고백했다.

B씨는 이후 회사 내에서 특이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은근한 핍박을 겪어야만했다고 전했다.

또 20대 때 4년간 지역의 한 콜센터에서 일한 C(34.창원)씨는 "회사에서 떼가는 수수료 명목의 돈은 '관례'라고 생각했다. 다들 이를 두고 부당하다거나 혹은 부당하다 생각하더라도 항의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을 노동의 대가로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같이 중간착취는 많은 곳에서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또한 이를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분위기상 나서지 못하는게 대부분이다.

김씨는 "게다가 경남의 경우 중국 또는 동남아 계열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하청업체들이 대다수라 이들에게 고용계약서의 상세내용이나 부대비용을 떼간다는 공지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르고 당하는 사람도 많지만, 알고도 당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노동자는 여전히 을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998년 중간착취 금지를 처음 합법화한 파견법 제정 후 현재까지 총 91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 중 법 개정으로 이어진 것은 단 2건뿐이며, 이 2건도 파견 노동자의 차별 개선에 대한 것으로 직접적으로 중간착취를 방지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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