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다음날 새벽 5시 출근하다 사고…법원 “업무상 재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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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5.23. 오후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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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리조트 주방에서 일하는 A씨는 지난해 6월 주방장의 제안으로 근무를 마치고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협력업체 직원이 합석하면서 식사는 술자리로 이어져 오후 10시50분에 끝났다. A씨는 다음날 오전 5시 상급자의 전화를 받고 깼다. A씨의 근무시간은 오전 5시부터였고, 집에서 리조트까지는 15.6km 떨어져 있었다. 평소라면 자동차로 20분 걸리는 거리였다. A씨는 부리나케 차를 몰고 직장으로 향하다 이날 오전 5시10분 충남 태안의 한 교차로 인근 도로에서 신호등, 가로등 등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병원으로 옮겨지다 숨졌다.

경찰조사 결과 사고가 난 장소의 제한속도는 시속 70km였으나 A씨는 시속 151km로 주행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0.077%로 감정됐다. 도로교통법상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인 경우 음주운전에 해당한다.

과속과 음주운전 등 A씨의 과실로 일어난 사고였지만 출근 중 벌어진 사고였다. 전날 늦은 회식과 음주도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 이 경우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까.

근로복지공단이 음주운전과 과속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며 A씨 유족들에게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 등을 거절하면서 사건은 법원으로 갔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종합보험에 가입하거나 피해자와 합의한 운전자에게 형사처벌상 특례는 인정하지만 음주운전과 과속의 경우 범죄행위라는 이유로 특례에서 제외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A씨 유족이 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취소 처분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법원은 “공단이 A씨 유족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채용된 지 70일 지난 A씨가 주방장 등과의 음주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술자리 종료 시각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사고일 이미 근무시간이 지난 오전 5시 상급자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서 출발했다. 고인으로선 지각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과속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고는 자동차를 운전해 출근하는데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라며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산재보험법은 입법취지가 다르다. 업무상 재해성을 부정해 산재보험법상의 보험급여를 부정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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