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기 싫어요" 도넘은 직장 괴롭힘, 처벌은 '거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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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모아 신고해도 기소 사례 극히 일부
노동청 괴롭힘 인정해도 경징계 다반사
증거 확보 못하면 문제제기 쉽지 않아
소문날까 가슴 앓이 하는 피해자 多
[파이낸셜뉴스] 직장 내 괴롭힘을 법으로 금지한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노동현장에서 괴롭힘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줄지 않고 있다. 위계가 살아 있는 직장에서 괴롭힘이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 어려울뿐더러,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되는 경우가 손에 꼽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법 개정 요구에 국회가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을 의결해 사용자의 괴롭힘을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고 처벌은 미약한 게 현실이다.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에도 외부에 피해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이 같은 피해를 지속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fnDB

■유명무실 '직장 내 괴롭힘 法'··· 삭히는 피해자들
29일 노동계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개중 정도가 심한 사건은 형사고소까지 비화되기도 하지만 실제 기소돼 처벌받는 사례는 1000건 중 3건에 지나지 않는다.

수도권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 이모씨(30대·여)는 병동 내 선배 간호사로부터 1년 넘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한다. 이씨가 본격적인 괴롭힘을 당한 건 입사 후 3개월이 지나면서 수간호사와 친한 특정 간호사가 은근한 폭력과 언어폭력, 불공정한 근무 강요 등으로 괴롭혀왔다는 것이다.

가해자인 선배 간호사는 좁은 곳에서 지나갈 때 이씨의 어깨를 강하게 친다거나 마치 등을 두드려 부르는 것처럼 주먹으로 척추뼈를 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지속된 괴롭힘에 이씨가 이유를 물어보니 “큰일 날 소리한다”며 “누가 보면 내가 태우기(간호사들의 괴롭힘을 가리키는 은어)라도 한 줄 알겠다”고 시치미를 뗐다.

지속된 괴롭힘에 퇴사까지 고민했던 이씨는 끝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지 못했다. 신고를 해도 처리하는 이들이 사측과 친한 간호사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못할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이씨는 “뉴스만 봐도 성폭력이나 구타 정도가 아니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가 없지 않냐”며 “주변에 상담해도 다들 원래 그런 사람이니 최대한 피하라고 하지 신고를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털어놨다.

대기업 계열사에 근무하는 윤모씨(31·여)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다. 윤씨는 팀원들 사이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받고 있다고 호소하는데, 업무상 필요한 정보공유를 뒤늦게 받는다거나 나쁜 소문을 내고, 회식이나 티타임 등 사내모임 연락을 아예 받지 못하는 식이다.

윤씨가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초로, 선배가 지속적으로 제안하던 소개팅에서 상대를 거절한 뒤부터다. 윤씨는 “계속 한 번만 만나보라고 하고 거절하기 어려워서 팀장님 조카를 만났는데 잘 되지 않았다”며 “이후에 팀원들 태도도 많이 바뀌고 ‘사는 세계가 다르다’느니 ‘된장녀’라느니 하는 말을 은근히 들리게 하더라”고 털어놨다.

폭력이나 대놓고 하는 욕설은 없지만 업무상 공유해야 하는 정보도 공공연하게 주지 않고 회식이나 식사, 야식도 윤씨만 빼놓고 먹는 게 일반적이 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갖은 이유로 욕설과 모욕을 들으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내 구성원을 노동청에 진정해도 기소까지 이뤄지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fnDB

■처벌규정 없어 '죽은 법'될까 우려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박모씨(20대·여)는 정부의 채용지원금이 끊어지자마자 사주의 괴롭힘에 노출됐다. 해산물을 취급하는 특수직종으로 다른 업무에 적응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지속적으로 타팀 업무 등 과도한 과제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상급자가 전 직원이 있는 곳에서 큰 소리로 질책하고, 개인 컴퓨터를 회의실로 옮겨놓는 등 부당한 대우도 이어가고 있는 상태다.

정부 지원금이 끊긴 뒤 자발적 퇴사를 노린 것으로 의심되는 괴롭힘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처벌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은 형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삽입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실효성 있는 제재가 이뤄진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지난해 말까지 이뤄진 직장 내 괴롭힘 진정신고 7953건 중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건 29건에 불과하다. 1000건 중 3건 정도다.

노동계에선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명문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지규정에도 처벌규정이 없어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에 인권위가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에 법 적용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고 행위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도입할 것을 권고했으나 노동부는 이를 즉각 수용하지 않았다. 이번 국회 개정안 역시 사주와 그 가족 등이 괴롭힘을 행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과태료 처분을 규정해 반쪽짜리 법도 못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조치 절차. fnDB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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