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줘! 경제] 항공사의 일자리 장사…날아간 조종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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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5.18. 오후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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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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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꺾이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요. 조종사가 진짜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고…"

이원준 씨는 2018년 4월 에어인천 훈련 부기장에 합격했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했습니다. 대학입학 후 10년째 달려온, 하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조종사의 꿈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우려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훈련 기간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한 달 40만 원을 받아야 하고, 4대 보험도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의아했던 건 훈련비용. 보통은 항공사에서 부담하는데(조기 이직할 경우에만 개인에 비용 청구) 에어인천은 전액을 개인이 내야 했습니다. 무려 5천5백만 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약서 한 줄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국토부의 신입 부기장 인정심사를 합격한 경우 정규직 고용을 보장한다'. 이 씨는 사업용 조종사 면허 소지자로 비행경력도 250시간이 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입 부기장 심사란 '특정 기종의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자격을 뜻합니다. 이 씨는 보잉 767 조종훈련에 돌입했고, 1년여 만인 2019년 7월 마침내 심사에 합격했습니다. 회사가 제시한 정규직 조건을 갖춘 겁니다.


그런데 회사는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경영 악화로 보잉 767을 리스 회사에 반납하게 됐다는 이유였습니다. '휴직을 하면 안 되겠느냐, 보잉 737로 돈을 들여 다시 교육을 받겠다' 사정했지만, 회사 관계자는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부르겠다는 말만 했습니다.

코로나가 불러온 희망, 그러나…

2019년 자본잠식률 381%. 국토교통부로부터 재무구조개선명령까지 받은 에어인천에게 코로나 19는 기회였습니다. 화물전용 항공사였기 때문입니다.

항공화물 운임지수인 TAC 지수에 따르면 홍콩∼북미 노선 운임은 2020년 1월 1㎏에 3.14달러였지만, 5월에는 7.73달러까지 뛰었습니다. 방역물품·백신 등 항공화물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난 영향입니다.


매달 이어지는 흑자행진에 에어인천이 항공기를 1대 더 늘린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이원준 씨는 회사가 자신을 곧 불러줄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2020년 6월 에어인천은 이 씨에게는 알리지도 않은 채 채용알선 업체를 통해 4명을 보잉 737 훈련 부기장으로 뽑았습니다. 보잉 737 조종 경력이 없는 건 이 씨나 이들이나 마찬가지. 오히려 유사 기종(보잉 767) 부기장 경험이 있는 이 씨를 제쳐놓고 훈련생만 4명을 뽑은 겁니다.

더 황당한 건 이들의 채용 조건이었습니다. 훈련생들은 1억 5천만 원을 에어인천에 '투자금' 형식으로 내야 했습니다. 1명당 1억 5천만 원을 채용알선 업체에 주면 이 업체가 1억 5천만 원을 그대로 에어인천에 입금하는 식이었습니다. 5년 동안 2차례에 걸쳐 돈을 돌려줄 거라고는 했지만, 이자 한 푼 못 받는 불합리한 조건이었습니다. (에어인천은 채용업체에만 이자를 지급했습니다.)


당시 지원자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억 5천만 원이면 당연히 큰돈이죠. 이자도 없고..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아시다시피 지금 항공사들 인원 감축을 하고 있고 비행을 더 쉴 수는 없었어요."

근로기준법 25조에는 경영상 이유로 해고할 경우 향후 동일 직종 해고자를 우선 고용해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채용 과정에서 금품을 수수하면 채용절차법 제4조의 2 위반입니다.

[김종귀 변호사]

법무법인 중용의 김종귀 변호사는 "상황이 나아져서 사람을 뽑으려면 당연히 이원준 씨를 먼저 뽑았어야죠. 돈을 노리고 기존에 한 약속을 내팽개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일자리 장사를 한 거예요."라고 강조했습니다.

<투자받은 적 없다더니..>

지난 16일 해명을 듣기 위해 인천 중구 운서동에 있는 에어인천 본사를 찾아갔습니다. 부사장이 얼굴을 내보내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인터뷰하고 있는 에어인천 부사장]

조종사 4명을 채용하며 받은 6억 원. 여기에 대한 부사장의 첫 마디는 "받은 적 없다"였습니다. 줬다는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는 이상한 상황. '채용알선업체를 통해 투자를 받지 않았느냐'고 좀 더 구체적으로 묻자 말이 조금 바뀝니다. "대여받은 금액은 있다. 인력 알선 업체로부터 대여는 받았다. 훈련생들 채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에어인천은 MBC 취재진이 본사를 방문한 바로 다음 날인 17일, 채용알선 업체에 '돈을 반납하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18일 오전 11시쯤 6억 원을 모두 입금했습니다. 그리고 이 돈은 곧바로 훈련생 4명에게 돌아갔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에어인천은 운영자금을 채용업체로부터 대여받는 조건으로 훈련 부기장의 모집과 추천권을 채용업체에 줬다고 답했습니다. 채용과 관련이 있었음을 결국 인정한 셈입니다.)

[에어인천이 채용업체에 투자금을 돌려준 내역]

부사장에게 '정리해고자 재고용 원칙'을 아느냐고도 물었습니다. 그는 "보잉 767과 보잉 737은 기종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 직종이 아니라고 봤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설득력이 있을까.

[김명준 노무사]

노무법인 대명의 김명준 노무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김 노무사는 "어떤 부서가 없어졌다고 그 부서직원을 자르진 않잖아요. 부서가 없어진 걸 사업의 폐지나, 근로자의 귀책사유로 볼 순 없거든요. 그럼 당연히 교육훈련이나 재배치를 통해서 다른 기종을 운전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게 우선이라고 봐야죠."라고 했습니다. 회사가 보잉 767을 반납한 것이 이원준 씨 책임이 아닌 만큼 보잉 737 교육 기회를 줬어야 했다는 얘기입니다.

임금 체불 의혹까지…

에어인천 노조는 작년 11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회사가 직원 월급을 많게는 40%까지 5개월째 일방적으로 깎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김태식 에어인천 노동조합위원장은 "사측이 일부러 협의를 질질 끌며 노조를 고사시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에어인천에 노조가 설립된 건 작년 9월, 회사는 이후 채용한 조종사 12명을 모두 계약직으로 뽑았습니다. 이제 조합원(11명)보다 비조합원이 더 많아졌습니다.

[김태식 에어인천노조위원장]

김 위원장은 "동일 직군에서 조합원이 과반이 안 된다는 이유로 다른 노조나, 노사 협의체를 만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사측은 이에 대해 "계약직 채용은 경영상 이유였다"고 답했습니다.

국토부·고용부 "재발 막겠다" 지만…

지난 18일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에어인천의 채용 갑질이 보도되자 정부 부처는 대응에 나섰습니다.

항공당국인 국토교통부는 항공사 연합회인 항공협회에 19일 공문을 보내 1) 채용 관련 부당한 청탁 또는 금전, 향응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거나 수수하는 행위 금지, 2) 정리해고자 우선 재고용 원칙 준수를 주문했습니다.

고용노동부도 담당 지방노동청을 통해 임금 체불뿐 아니라 부당 해고, 채용절차법 위반 등 에어인천의 전반적인 노무 관련 의혹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재발을 막아보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앞섭니다. 화물 쪽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객기는 1년째 발이 묶여있습니다. 항공 종사자들은 극도의 고용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반값 월급에 계약직인데도 채용 공고만 나면 지원자가 몰립니다.

계약서를 무시하고 회사 마음대로 해고를 하고, 채용을 대가로 억대의 돈을 받는 황당한 채용 갑질은 이런 토양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당국의 감시와 적절한 사후조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2월 18일 뉴스데스크 영상 "조종사 되려면 1억 5천만 원"…에어인천의 수상한 채용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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